경남 함양군 승동면 상백리에 있는 음성 나환자들의 자활촌 중생원 내에 상래백 중생원 분교가 있습니다.
소위「미감아」들, 말하자면 부모들이 과거에 나병을 앓은 경력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일반 학교에서 받아 주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학교이지요
저는 어느 날 이 아이들을 위해 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자원해서 이 상래백 중생원 분교에 왔습니다.
농토를 일구어 가난하게 살아가도 부모들, 더구나 나병의 흔적으로 얼굴이나 손발이 흉하게 일그러진 부모들 밑에서 건강하고 정상적인 아이들이면서도 그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저는 해 주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노트가 없으면 노트를 사 주고 신발이 없으면 신발을 사 주고 … 정신적으로 병들지 않게 많은 이야기를 해 주어야 했습니다.
더구나 제게 제일 크고 어려운 문제는 중생원 내의 어린이들이 소위「미감아」라는 이름을 달지 않고 정상적인 아이들과 꼭 같이 본교에 입학해서 공부를 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의에 의해 중생원 분교에 다니는 것은 괜찮지만 일반 학부형들의 압력 때문에 다니고 싶은 학교에 다닐 수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아이들은 그 학부형들의 아이들과 꼭 같은 건강아들이고 정상아이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병들지 않은 아이들을 강제로 격려시키고 적대한다면 이 아이들은 자연히 정신이 병든 아이들이 되고 말 것인데 어른들은 자기들이 그런 무서운 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생각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입학을 앞둔 어느날 읍내 학교 교장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나환자 자녀들의 입학 허락이 생길 때까지 매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흥분한 학부형들로부터 돌팔매를 맞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저는 피를 흘리며 중생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운동장에 맥없이 주저앉은 저는 피곤하고 슬펐습니다.
그때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들렸습니다.
그런데 뜻 밖에도 나환의 흔적이 전혀 없는 낯선 남자였습니다.
그 쪽에서 말을 걸어 왔습니다. 그분은 저를 알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자기의 아내가 나병을 앓았는데 소록도에서 완치가 되어 이 중생원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부인은 저도 아는 분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내일 부인을 데리고 이 중생원을 떠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수없이 놀랐습니다.
병든 아내를 끝까지 사랑하고 보살펴 준 남편, 보기에도 끔찍하게 나환의 흔적이 역력한 아내를 버리지 않고 끝내 서울 교외의 한적한 곳에 집을 마련해서 아내를 데려가는 그분의 사랑이 너무도 거룩해 보였던 것입니다.
저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분의 지난 날을 듣고 있었습니다.
대강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결혼한 지 2년 만에 아들을 낳고 다시 1년이 지나 아내에게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병원에 가 보았더니 나병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집안 망했다며 몸부림 치는 통곡 소리를 들으며 나는 아내를 데리고 집을 떠났죠.
소록도로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소록도에다 아내를 두고 오는 내 심정은 말로 형언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표를 낸 까닭은 국민학교 교편 생활을 하던 제게 아내가 나병이었는데 괜찮겠느냐는 주위 이야기들을 듣고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서였습니다.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가끔 아내를 만나러 가기도 하고 보고 싶고 안타까운 마음을 편지로 달랬습니다.
어린 자식을 떼어 놓고 소록도에 가 있는 아내의 편지도 구구절절이 자식을 그리는 어머니 마음이었습니다. 이렇게 삼 년이 지났습니다. 아내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소록도가 아니고 중생원이라는 자활촌에서였습니다. 병이 다 나아 퇴원을 해 이 중생원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나는 한 달음에 이 중생원으로 달려갔습니다 … 미칠 듯이 기쁜 마음으로.
그러나 아내를 만나는 순간 나는 정말 이 사람이 내 아내란 말인가 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내의 모습은 전혀 다른 얼굴이었습니다.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아내였습니다.
아내는 집으로 가자는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나가고 싶지 않으니 중생원에서 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나는 아내의 마음이 풀려 내게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원하는 대로 아들을 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될 때까지 데리고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또 삼 년 아들이 일곱 살이 되어 데려갔습니다.
아내는 순순히 아이를 보내면서도 자신은 절대로 중생원 밖으로 나오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아내는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나는 많은 생각을 한 끝에 외딴 산 속에 집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나도 아내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 사람은 불행한 생활에서 꼭 벗어나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제 집도 마련되고 아내도 승락을 해 내일 떠나게 됐습니다.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얻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저는 용기가 났습니다.
「미감아」라는 이름을 붙여 외면하고 소외하는 사람들에게 이 분의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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