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에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라고 오귀스뗑 신부는 덧붙었다. 맞는 말이기는 했지만 그 당시로서는 사치스럽게 생각되었다. 9월18일 시공된 가로세로 크기가 14m50cmㆍ7m50cm인 한국궁전형태를 닮은 별채는 12월 5일 지붕이 얹혀졌다.
신자수가 아직 5∼6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미사를 행하기 위해서는 방하나 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교회의 건설 속도는 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집 건축에 필요한 1천 5백 그루의 나무 구입과 그 나무들의 각촌화(角村化)는 나의 보잘것없는 자금을 적지 않게 경감시켜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나무들을 보관해야 했는데 기후변화로부터 그 나무들을 다 보호하기에는 창고가 부족했기 때문에 밀짚으로 덮어주어야 만했다. 기독교인들을 기다리면서 두 명의 이교도(異敎徒)들이 매일 미사에 참석하러 오는 것을 보았다.
내가 혼자만 있을 날에도 그들 중 하나가 나에게 미사용 병들을 가져다주었다. 외부로부터 온 새 신도들의 신앙심의 목적이 무엇일까 나는 자문해보았다. 내 미사의 임시보조자는 마침내 그 마각(馬脚)을 드러내었다. 그는 충주 소재 친위대장과 노름을 했다. 요행의 신이 그를 유리하게도 해주었지만 상대방의 속임수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는 대부의 강력한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그에게 이야기했다. 『네가 미사에 매일 참석한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느냐?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르다니…이 어리석은 자야!』
당연히 그는 자기 옹호를 했지만 그의 신앙심은 금방 완전히 메말라 버렸다.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었고 몇 년 후에 그는 세례도 받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그의 동료 역시 찌꺼기 같은 의도들만 지닌 인간이었다.
하지만 희극배우 즈네스뜨(Genest)도 무대 속으로 들어왔을 때는 (태어났을 때는) 성인(聖人)으로 태어나지 못했지만 죽들 때는 순교자가 되었다. 은혜는 그 사람에게도 내려졌는데 그는 그리스도인으로 죽었다. 첫해와 그 이후 계속 비통함이 끊이질 않았다. 배틀레헴과 칼베르(lIe Calvaire)이후 수많은 영혼들이 치르는 댓가가 바로 그것이었다.
말라코프(Malakoff)의 기인(奇人)이『전쟁 중에 모든 것이 분홍빛이지는 않느니』라고 노래하지 앉았던가? 스스로를 위안하고자 마시는 술잔에 반(反)하여 우리의 잔은 포도주보다 겟세마네의 수난들로써 늘 채워지지 않았던가?
어쨌거나 교인(敎人)의 수는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늘어나고 있었다. 성당으로 사용되는 방은 더 이상 그들을 수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 동안 나는 약간의 자금을 모으게 되었다. 결국 1903年에는 교회를 세우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과 같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 지방에서는 유일한 것이었기 때문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만약 아름답게 짓고 싶은 유혹에 끌린 경우에도 존경하옵는 뮈뗄 주교님께서는 나에게 교회를 너무 아름답게는 짓지 말라고 충고해주셨다. 그 분은 덧붙여서『외인들의 눈을 현혹시키지 않도록 가능한 한 가장 못한 것을』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신중하신 주교님께서는 아직도 박해받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계셨다. 이듬해 그분께서는 꼭 같은 뜻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여러분들이 더욱 열성석인 주교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더욱 신중한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자기 자신을 더 잘 표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해 1903년에 그 기념건조물을 세우는 데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나쁜 일이 처음부터 우리 잘 따라다니고 있었다.
바로 서울에서 사람들은 내가 매우 권태로와 하고 있으며 이곳이 선교구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인가가 나로 하여금 정반대의 것을 생각케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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