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가 누구를 사랑한다 함은 누구와 누구가 서로 거래가 성립되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 거래가 뒤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조차도 이 거래의 개념에 포함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눈에 보이는 거래 또는 나에게 들어오는 거래 나에게 물질적으로 이익이 되는 거래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나는 가령 그 거래가 물질적이 아니라도 인간과 인간과의 사이에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그 거래의 단계와 유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인간 관계의 거래(기브ㆍ엔드ㆍ테이크)는 네 단계로 성립된다고 봅니다. 그 첫째 단계는 식물적인 단계라고도 할 수 있는 가장 낮은 단계의 거래가 있는데 엄밀한 의미에서는 거래가 아닐런지 모릅니다.
나는 그것이 식물이 영양을 섭취하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믿기만 하는 것을 말함니다. (테이크ㆍ엔드ㆍ테이크) 가령 그것을 인간 관계에서 말한다면 기생적 의존이 바고 그런 것입니다. 식물적 인간이란 말이 쓰이고 있는데 즉 영양만 섭취하면서 정신없이 생명만 유지하는 인간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에 있어서도 이러한 식물적인 거래의 단계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랑이 있다면 또는 자기의 욕망 충족만을 고집하는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가장 낮은 식물적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물적 단계에서 발전한 것이 둘째 단계의 동물적 단계입니다. 이 동물적 단계에서는 일방적으로 섭취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외 식물적 단계는 다분히 도독의 행위 같은 것에서 좋은 예를 볼 수 있겠으며 여기 동물적 단계에서는 낮은 단계의 상거래(商去來)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상거래도 높은 수준의 명랑한 거래에서는 결코「받고 주는」법이지만 아직도 낮은 단계의 상거래에거는「주고받는」데까지 이르지 못합니다.
받고 주는 것입니다. 동물들이 자기의 욕망에 의하여 행동하는 것은 바로 받고주는 형식인 것입니다. (테이크ㆍ엔드ㆍ기브) 남녀 간의 사랑이나 심지어 사제간 모자 간의 사랑에 있어서조차도 이러한 것이 있습니다. 연애를 하는 젊은이들은 달콤한 연애편지를 씁니다. 초기의 연애의 행위는 거래로부터 시작하는 것인데 흔히 편지를 매개로 하는 수가 있습니다.
요즘은 그 형태도 다분히 직감적인 것이 되어서 남녀가 다방 같은 데서 미팅을 하며 그것이 계기가 되어 연애가 성립되는 수도 있고 또는 장난기가 섞인 TV의「청춘만세」등에서 인연이 맺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합니다만 옛날에야 그런 것이 있을리 없습니다. 고작해야 편지가 마음을 이어주는 유일한 매체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연애편지도 심리적으로 보면 상대방이 먼저 나에게 마음을 토로해 오고 내가 거기에 답장을 쓰는 것이 횔씬 더 마음이 편안한 것입니다. 받고 주는 형식을 바란다고 할 수 있지요. 흡사 장사꾼이 돈을 받고 물건을 주는 것과 같이 불안정한 거래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단계의 사랑을 가지고는 아직도 우리가 기대하는 사랑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보다 높은 단계의 사랑을 동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사꾼이 손님의 눈치를 살펴 물건값을 부르거나 돈만 손에 쥐면 볼장 다 봤다는 태도의 상거래는 정말 동물적이라 하지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돼지우리에 갇혀 있는 돼지 새끼들은 먹는 것만 찾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통에 먹이를 부어주면 한 곳에 돼지 새끼 대가리 열 개가 일시에 모여듭니다. 정말 가관입니다.
사람의 사랑이 이와 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받고주는 것만 가지고는 아무래도 부족합니다. 좀 더 인간적인 면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단계는「주고받는」단계입니다. 여기서 사랑의 거래가 인간적 특징을 가지게 됩니다. 이 인간적 단계의 거래는 영양의 섭취를 특징으로 하는 식물적 단계와 욕망 충족을 본질로 하는 동물적 단계를 넘어서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인간과 인간의 거래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승화합니다. 모든 거래는 이성(理性)에 의하여 통제되는 것입니다. 이성은 밝은 지성과 높은 가치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받는 것을 전제로 주지만 결코 받는 것이 야박하지 않게 여겨집니다.
생각하면 너무 인상적인 것이 오히려 위선(僞善)의 가책 같은 것을 격파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 위선은 차라리 동물적 무질서나 투쟁보다는 한결 인간적인 것입니다. 소위 우정(友情)이란 이름의 사랑의 거래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내가 친구에게 무엇을 준다든가 또는 해준다는 것은 틀림없이 나에게로 돌아오는 결과가 됩니다만 돌아오는 결과를 미리 계산하여 주는 것이 아니라 주고 나서 필연적으로 오는 결과이어야 하겠습니다. 그 결과의 계산성 즉 내가 준 것과 비교해서 수지타산이 맞는지 아닌지에 대하여는 고대하지 아니하는 것이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당신을 위하여 수고를 했으니 당신은 나를 위하여 얼마를 수고해 하는 식의 상거래적인 것이 아니고 나는 나의 의무로서 나의 양심에 의지하여 했노라 하는 그런 식의 거래가 인간적인 것입니다. 이성적이란 그런 양심적 행위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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