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물질문명이 인간을 극도로 타락시켰다고 하는데 그것은 곧 물질 획득의 용이성 때문에 협조적 분의기가 점차 소홀해지는데 그 근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이 곧 인간의 행복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된 오늘날 우리에게는 다시금 협조의 미덕이 더욱 요청되게 되었습니다. 협조는 곧 이리하여 봉사ㆍ헌신에 연결되게 됩니다. 협조는 단순히 하나에 하나를 더하여 둘이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에 하나를 더하여 하나가 되고 또 열이 되고 스물이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지능지수(IQ) 80 되는 아이가 둘이 협조하면 지능지수 1백20짜리의 능력을 갖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바보는 열이 모여도 바보라는 견해는 틀린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합니다. 그뿐이겠습니까. 이러한 원리를 알고 네가 스스로 참여하는 협조는 인간 가치의 극치로서 봉사에 연결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만을 위하는 것이 아닌 나, 이웃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나, 그런 나는 얼마나 대견스런「나」이겠습니까? 이제 한 가지 행복은「더 잘 사는 것」이란 풀이를 첨가하여 이 소망의 장을 끝내기로 하겠습니다.
전에도 나는 여러 번 이「더 잘 사는 것」(Better Living)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학생들은 한결 공명해 주었고 또 어떤 학생은 그것에 대해서 회의를 품는 학생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나의 주장에 대해서 적극적인 지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선태군이나 진희양도 지지해 준 학생 중의 하나입니다. 사실 나중에 알아낸 일이지만 지금 젊은 학생들은 아무도「최고로 잘 살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모양입니다.
최고로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막다른 골목입니다. 그러니까「더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는 조심스런 안정 추구의 욕구가 저변에 깔려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최고로 잘 산다는 표현에도 별로 큰 호감이 안 가고「더 잘 산다」는 데 호감이 가는 모양입니다.
그러면「더 잘 산다」의 그 본뜻은 어떤 것일까요.
여기서 내가 왜「더 잘 산다」는 말을 내세우는가 하면 그 이유는 이러합니다. 산다-더 잘 산다-최고로 잘 산다는(영어로 써 보면 good life-better life-best life) 식으로 잘 산다를 표현할 수 있는데 맨 처음의 잘 산다(good life)는 너무 막연한 표현이며 잘 사는 기준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의 최고로 잘 산다는(best life) 것은 절대적 표현이 되어서 좀처럼 사람의 힘으로는 성취될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더 잘 산다」는 표현은 비교적인 표현으로서 절대적ㆍ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비교적이고 발전적인 것입니다.
무릇 인생은 발전적인 곳에 행복이 있는가 봅니다.
발전적이란 것은 비교적인 의미에서만 이해가 가능한 것입니다. 행복이 비교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보면 인생은 정말 고통뿐이거나 완전한 천당뿐일 것입니다.
「더 잘 산다」는 의미의「잘 산다」는 것은 무엇과 비교하여 잘 산다는 것입니다. 우선은 역사적 진전과정 안에서 과거에 비하여 현재가 더 잘 산다는 식의 표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적 연속체로서 역사적 과정, 즉 과거 현재 미래라는 것은 결코 따로따로 분리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속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만약 과거 현재 미래가 따로따로 분리해 있다면 뒤범벅이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또 어느 하나가 떨어져 나가 있을 수도 있을런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가 역사를 인식할 적에 결코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역사 미래의 역사를 분리해서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과거는 결국 현재의 퇴적물이요 미래는 확실한 가능 상태로서 현재에 들어오는 것이라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현재를 거치지 아니한 과거가 없고 과거의 현재를 기초로 하지 아니하는 미래는 가공(架空)이거나 허구(虛構)밖에 될 것이 없습니다.
과거보다 현재가 더 잘 살고 현재보다 미래가 더 잘 산다는 것은 확실히 행복한 생활입니다. 나의 인생이 그렇고 우리나라가 그렇고 세상이 그렇다면 확실히 지상낙원이란 것이 허구일 수만은 없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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