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은 남편이 나에게 무엇을 주니까 사랑한다는 형식이 아니라 내가 남편을 사랑하니까 남편이 나에게 사랑을 준다는 그런 관계요 남편도 역시 그런 사고 즉 주고받는 사고에서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손익 계산으로 재어보는 법이 없습니다. 주고받는 것은 인간적인 특징이요 손익을 재어보지 아니하는 것은 이성과 양심과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면 받는 것입니다. 주는 것이 곧 받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지만 받는 것을 예상하여 주는 것이 아니라 양심과 의무가 이성적 판단에 의하여 주게 되는 것입니다. 받는 것은 주는 것의 결과일 따름입니다. 주는 것은 나의 일이요 받는 보상은 남의 일입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는 것뿐입니다.
사랑의 거래의 가장 숭고한 양식은 영혼적 요청에 의한 신적 (神的) 단계의 주고 주는 것 (기브ㆍ앤드ㆍ기브) 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 이르게 되면 사랑은 영원과 직결됩니다. 영원적 갈망 영원적 요구 안에서는 받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는 것뿐입니다. 물도 마음도 영혼도 모두를 주는 것입니다. 나의 소유물 나의 전부를 주는 것입니다. 인간적 단계에서는 동기로써 받든지 결과로써 받든지 받는다고 하는 것은 필수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적 단계에 있어서는 받은 것이 전혀 생각되지 아니합니다. 보상이란 당초에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머님의 숭고한 사랑 안에서 이 신적 사랑을 맛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충동도 본능도 이성도 지혜도 없습니다.
오직 주는 것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어머니의 그 숭고한 사랑에는 이성도 지혜도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충동도 본능도 없습니다. 그런 것을 훨씬 초월하여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틀림없이 자기 모상대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을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옛날의 농촌 어머니들을 생각합니다. 지금은 탈곡기도 있고 트렉타도 있습니다만 지금부터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농촌에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오뉴월 삼복더위에 보리타작 하는 광경을 상상해 봅시다.
이제 돌도 지나지 않은 갓난아기는 어머님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습니다. 먼동이 트기 전에 논밭으로 나가는 아빠의 시중을 들어야 하며 하루 종일 뙤약볕을 가릴 틈도 없이 긴긴 하루해가 아쉬운 듯 지나버리고 맙니다. 보리타작 마당에 꼿꼿이 서 있는 보리 이삭들은 소인국 병정들이 창을 들고 환호하며 쳐들어오는 것과도 같습니다. 아빠가 몇 순배 땀을 흘릴 적이면 엄마의 등에는 아기가 있는지 없는지 감각이 없습니다. 그 보리타작 마당에 까꺼레기 하나 없이 말끔히 청소하고 나면 밤은 이슬이 내립니다. 밤은 휴식을 부릅니다. 잠자리가 미처 정리되지도 않은 채 구겨 벤 팔벼개에도 잠은 꿀맛입니다. 아기는 그런 줄도 모르고 배고파 울고 배설하랴 웁니다. 엄마는 그 단잠도 아랑곳 없습니다.
또 젖을 물리고 그래도 안 되면 업고 일어섭니다. 허둥지둥 하다 보면 닭이 울고 새벽이 됩니다. 그래도 어느 엄마가 봇짐 싸고 달아났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에 무슨 충동이 본능이 이성이 지혜가 필요합니까? 필요없습니다. 오직 내가 주는 것입니다. 나는 주어질 것입니다. 내 전부는 줄거리입니다. 여기엔 논도 윤리도 없습니다. 있는 것은 주는 것뿐입니다. 하느님은 이와 같이 자기의 모상을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되면「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나는 사람과 사람과의 사랑의 관계를 주로 거래적 견해로부터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나는 사랑의 상대성 원리라고 해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행위를 다른 면으로 보면 지향적(志向的) 경향과 구제적(救濟的) 경향으로 보게 됩니다. 이른바 에로스적 사랑과 아카페적 사랑이란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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