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살에 과부가 된 어머니는 가난 속에 우리들 어린 형제를 남겨 두고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나는 다섯 살짜리 동생 손을 잡고 문전걸식을 하다가 재단법인 용진육아원에 입원하여 추위와 배 고픔 속에서나마 그곳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64년 2월 열아홉 살로 중학을 나온 나는 고향으로 돌아와 호적을 열람해 보니 부모님의 혼인신고는 커녕 우리 형제의 출생신고와 부친의 사망신고 등 복잡한 호적관계가 일체 정리되어 있지 않아 이장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일을 마칠 수가 있었다.
그 해 6월 훌쩍거리는 동생을 뒤로 두고 원장님이 쥐어 주신 차비를 손에 쥐고 육아원을 떠났다.
그동안 키워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자립할 때까지 동생을 더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면서 …
용산역에 내려 십여 일을 방황하니 돈은 떨어지고 일자리는 점점 구할 수 없게 되어 굶으며 노숙하다가 갈월동 남부 직업안정소를 찾게 되었다.
월급이 적다고들 뿌리치는 일자리를 차지하고 보니 무허가 하숙집 고용원으로 밥이나 먹여 준다는 조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피부병과 헤어진 옷으로 흉칙한 몰골을 하고 있었고 게다가 나의 신분을 보장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 일자리에도 감사할 뿐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든 성실히 일을 했다. 6개월이 지나자 주인은 내게 2만원의 보수까지 주면서 보다 나은 직업을 찾도록 권하는 것이었다.
그 후 무허가 이발소의 세발사로 일하면서 재건대원이란 청년을 알게 되었다.
재건대에서는 각 경찰서 정보과의 감독 아래 직원이 파견되어 불우한 청소년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67년 4월 나는 마포구 재건대에 입소하여 넝마주이로 나서기 시작했다.
통금 해제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골목길을 수없이 누볐다. 부지런히 청소차들을 따라 다녀서 68년 5월에는 20만원을 저축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창 너머로 단란한 가정을 보게 되었다. 깨끗한 집 행복한 웃음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 …
나도 인간답게 살아보고 싶다! 저 사람들도 행복을 거저 얻은 것은 아니리라. 나는 쉬는 날인 간조날에도 일을 해서 남보다 작업 능률을 2·3배로 올릴 수 있었고 오직 근면하고 절약한 결과 70년 9월에는 60만 원이란 거액을 저축하게 되었다.
동생과 함께 농촌에서 생활할 수 있는기쁨에 떨며 영등포 대림동에 계시다는 모친을 찾았다. 16년 만에 만나 보는 어머니 … 그러나 그 목소리는 너무도 냉혹하였다.
『죽었다는 소릴 들었는데 … 어쩌자고 여길 찾아 왔어. 누가 알까 무서우니 어서 돌아가 다오. 영감님은 외출했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지않아 다행이다만 … 』
나는 어머니를 찾아온 것을 후회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가엾은 동생의 얼굴이 자꾸 어른거린다.
육아원에서 퇴원한 동생은 한때 부모와 사회를 원망하고 반항해서 기술을 익혀 주려 해도 참을성이 없었으나 이제는 나의 충고를 받아들였음인지 목공 기술을 배워 자활하고 있다.
우리는 고향으로 내려가서 아버지의 친구이셨던 이장님을 찾아뵙고 농촌에 정착하겠다고 말씀드렸다.
71년 3월 나는 논 8마지기를 샀고 고향에서 5㎞쯤 되는 월야에서 시골 처녀를 맞아 조촐한 구식 결혼식을 올렸다. 살림 기구는 별로 없으나 단란한 신혼생활이 시작된 것이었다. 물론 경험도 없이 농사를 시작한다는 점에 무리는 있었지만 늦도록 농사법을 공부하고 틈 나는 대로 동네 일을 거들어서 농비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금년은 병충해가 심해 멸구도 많았지만 일주일 간격으로 강력히 약제를 살포하고 노동력을 가하니 아무런 해도 받지 않았다.
지난 가을에는 일반미와 보리 등을 생산하여 50만 원의 소득을 볼 수 있어 이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여러 사람에서 알리고 싶을 뿐이다.
더욱 기쁜 일은 금년 봄 법무부에서 실시한 교정직 5급 공무원 필기 시험에 합격된 일이다.
공부란 시간이 넉넉하고 환경이 좋아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고생하면서도 꾸준히만 한다면 제 실력을 갖추게 된다고 본다.
이제 두 딸의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책임을 느끼며 올 봄에 지을 아담한 우리집을 설계하면서 행복은 거저 얻는 것이 아니고 피나는 노력으로서만이 정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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