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훈 신부〈신림동 주임〉-진실의 전달자 되길
창간 금경축을 눈 앞에 두고 있는 한국 교회의 유일한 주간지 가톨릭시보가 이제사 발행 1천호의 기념을 가지게 됨을 생각할 때 그간의 어려움이 얼마나 컸겠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1천호 발행의 경사를 모든 신자와 함께 진심으로 축하드리면서 불초 이 사람이 이 지면을 장식하게 됨을 송구스럽게 여기며 또한 큰 영광으로 삼는 바입니다.
참으로 형언할 수 없는 가시밭길을 걸어 왔으리라 믿어지는 오늘의 시보가 이만큼이나마 발전하는 데에 힘을 기울여온 대구대교구의 역대 실무진에게 그간의 노고에 대한 치하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싯점에서 모든 신자와 함께 주어진 바 사명에 충실하였다는 긍지를 자부할 수 있겠는지 반성해 보는 겸손한 마음 자세도 있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가 진리의 수호자이어야 한다면 교회의 매스콤은 용기 있는 진실의 전달자 내지 전파자가 되어야 합니다. 진실이 아닌 정의나 사랑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교회 내의 압력이나 교회 밖의 어떠한 압력도 진실을 숨기도록 작용할 수는 없습니다. 진실은 밝혀져야 하는 것이며 또 매스콤을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야 합니다. 거짓이 진실의 가면을 쓰고 탈바꿈하여 매스콤을 타게 될 때 이로 말미암는 진실의 피해에 대하여는 누가 책임을 져야합니까? 또 진실이 매스콤을 통하여 알려지지 않을 때 그 매스콤은 사명감을 저버린 일종의 사기 행위를 저지르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일반 보도기관을 신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이러한 데에 연유하는 것으로 생각할 때 우리 한국 교회의 유일한 보도기관인 가톨릭시보만은 항상 곧고 바른 진실의 전달자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4면의 신문지 한 장을 50원이나 주고 사서 보는 신자들의 정성과 바램이 오로지 가톨릭시보는 속세에 아부하지 않는 진실의 전달자라 믿는 까닭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 가지 간절한 부탁은 현대 자본주의 경제하의 가장 큰 결함이라 생각되는 자기 본위의 의식 구조를 깨트리고 진정한 사회 공동체의 의식 계발을 위하여 더욱 힘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는 주님의 근본적 가르침인 사랑의 실천을 의미합니다.
이웃 사람에 대하여 가장 소극적인 사람들이 우리 교회의 신자들인 것처럼 생각되는 것은 얼마나 서글픈 현실입니까?
다시 한 번 축하의 말씀을 드리며 끝없는 발전을 기도합니다.
◆박복주 수녀〈샬트르성바오로회〉-보다 참신한 편집을
사람들은 어떤 자랑스런 결실에 접했을 때는 그간의 어렵고 괴로웠던 일들을 다 잊고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법입니다. 가톨릭시보가 지령 1000호를 기록하는 오늘을 맞는 기쁨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는 그동안 가톨릭시보를 만들고 키우는 데 직접적으로 참여해온 분들의 기쁨일 뿐 아니라 한국 가톨릭 교회의 기쁨이며 동시에 가톨릭시보를 아껴온 우리 공동체 안의 모든 형제들의 기쁨이며 자랑일 것입이다.
새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창간 이래 가톨릭시보가 우리 교회에 끼친 공적은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하다는 것은 가톨릭시보의 성장을 지켜본 모든 이들이 공감하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장에 만족해 버리기엔 우리 교회의 유일한 신문인 가톨릭시보가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고 가톨릭시보에는 우리 교회의 기대 또한 무척 크기 때문에 이 기회를 빌어 소중하고 위한 자식일수록 엄하게 키워야 한다는 선현의 말을 기억하며 몇 가지 제언을 드림으로써 지령 1천호를 맞는 축사에 대신 할까 합니다.
지금껏 가톨릭시보가 어려운 여건 아래서도 맡은 바 소임과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최선을 경주해 왔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라 믿습니다만 이미 교황청 매스콤위원회가 홍보 수단에 관한 사목훈령으로 발표한「一致와 發展」교서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使徒들과 그 후계자들에게「萬民」을 가르치며「세상의 빛」이 되고 언제 어디서나 복음을 선포하라고 명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고 행하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제 그동안 가톨릭시보를 관심 있게 읽어 오면서 느낀 몇 가지 점을 지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실무진들이 안일한 자세로 제작에 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느끼게 합니다. 이는 가톨릭시보가 경쟁 대상이 없는 우리 교회 유일의 신문이라는 데서 연유하는 무의식적인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구태의연하고 안이한 제작 편집 방식을 벗어나 좀 더 참신하고 창의적인 방향으로의 전환이 아쉽습니다.
흔히 가톨릭 간행물은『고루하고 평협하다』는 인상을 주기 쉬운데 독자층을 너무 가톨릭 신자로 의식하는 탓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홍보 수단은 성당의 강론대가 아니다. 교회의 표현 수단은 적어도 세속 작품들과 동등해야 한다는 사실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교황청 매스콤위원회의 지적을 여기서 다시 한 번 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발행처가 지방인 탓으로 받는 제약이라 보여집니다만 보필진이 한정돼 있어 다양성이 없고 간혹 어느 특정교구의 기관지 같은 인상을 줄 때가 있습니다. 가톨릭시보가 명실공히 한국 가톨릭 교회 전체를 대표하고 대변하는 신문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취약점에서의 탈피가 시급하다고 생각되는 만큼 각 교구와의 유대와 연락망을 재정비하고 강화하여 보다 폭 넓게 전국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하리라 믿습니다.
끝으로 가톨릭시보가 만민을 가르치고 세상의 빛이 되고 언제 어디서나 복음을 선포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구현하는 선도자적 역할을 훌륭히 해 줄 것을 교회 안의 모든 형제들과 더불어 기원합니다.
◆한몽연<평협 서울대교구 부회장>-교양 면을 충실히 …
이번으로 가톨릭시보가 천호를 내놓게 되었다. 천돌을 맞는 기쁨도 크려니와 천리를 달린 노고는 더욱이나 장하다. 축하의 말씀과 아울러 근 50년을 거센 풍랑과 싸워온 고난의 역정(歷程)에 대하여 위로와 격려도 아끼고 싶지 않다. 가톨릭시보 당로자들에게 거듭 치하를 드리는 바이다.
역사는 공(功)과 과(過)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동안 가톨릭시보는 가톨릭 출판계의 중추로서 쌓은 공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대화의 광장으로 이바지한 공을 찬양하고 싶다. 대화는 일치의 전제요 과정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수난 전「겟쎄마니」동산에서 드린 일치의 기도는 모든 크리스찬의 기도요 생활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 일치를 위한 대화는 더욱 간절하다.
대화에는 대화의 광장인 매개체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가톨릭시보는 그동안 한국 가톨릭의 대화의 광장으로 크게 봉사하였다. 성직자ㆍ수도자ㆍ평신도가 하고 싶은 말을 했고 듣고 싶은 말을 듣도록 진력하여 주었다.
둘째 정의의 기수로서 싸워 주었다. 정의는 사랑의 알맹이요 속성이라고 본다. 정의를 위한 투쟁은 사랑의 실천이 되겠기 때문이다. 영혼만의 구원이 아니고 전 인간의 구원을 위한 십자가는 사회 정의를 위한 항쟁의 절정이라고 볼 수 있다. 불의를 보고 도피하는 것도 사랑이 아니다. 없는 이웃을 돕는 한 푼의 애긍도 사랑이겠지만 금력과 권력에 억눌린 이웃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제도적인 불의와 부조리에 항쟁하는 것은 더 큰 사랑이요 봉사일 것이다. 가톨릭시보는 정의의 편에 서서 싸워 주었으며 앞으로도 꺾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셋째 가톨릭 교양지로서의 사명을 다하여 주었다. 일치를 위한 대화도 정의의 사명감도 크리스찬으로서의 자아의식의 계발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평협은 76년을「공부의 해」로 설정하였다. 평신도 교육을 위한 평협 자체의 세미나나 피정도 중요하지만 매스콤을 통한 전체 신자의 의식 계발은 더욱 절실하고 효율적이라고 믿어마지 않는다. 평협은 가톨릭시보를 위시한 가톨릭 출판물 보급에 적극 나서고 있거니와 가톨릭시보는 더욱 교양지로서의 등불을 높이 쳐들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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