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두 번밖에 다니지 않는 버스에서 내려 40리 길. 십 리 밖까지 나와 영접하는 교우 청년들에게 짐을 맡기고 도착하니 날이 저물었다. 시간 걸려 정성껏 장만해 내온 저녁상을 신부님과 마주 받고 앉아보니 기가 막힌다. 내쪽 밥도 그릇 위에 것이 더 많이 담겼는데 신부님쪽 것은 엄청나게 많아 질려버렸다. 이건 차라리 밥그릇이 아니라 솥째로 가져온 것 같다.
큼지막한 양푼에 수북하게 밥이 답겨져 있다. 많이 잡수시란 미련한(?) 인사를 남기고 교우들이 물러가자『회장 신부 대신 소가 온 줄 잘못 안 것이 아닐까?』신부님의 농 섞인 일성(一聲)이 곁들였다.
그러나 상을 물린 다음에야 밥을 그리도 많이 떠놓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상이 밖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아이들을 거느린 부인들이 몰려왔다. 행여 빠질세라 소리쳐 아이들을 불러 모아놓고 밥 한 술씩 배급하느라 법석이다. 그 이유는『신부님 강복하신 음식을 먹으면 명오(明悟)가 열려 공부도 잘 한다』는 것! 기 막히고 놀라운 이런「거룩한 미신」을 누가 가르쳐 주었든가? 이런 곳에도 어느새 토착미신과 성교회 교리가 결탁하고 있는 것이다. 작별하고 돌아선 외진 길에서 그 장면이 떠올라 눈물이 나오도록 웃었다.
하긴 20년 전 교우들이라 지금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부활성야 부활 성수 축성이 끝나고 모두 돌아갈 때면 한 섬도 넘는 성수가 순식간에 바닥이 났다. 그래도 성수를 퍼다가 젖소에게 먹였다는 서양의 옛 농부 얘기에 비하면 좀은 낫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 비합리적 태도 안에 간직된 소박한 마음씨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 듣지 않으려드는 요즘 인심에 비해서 말이다.
11월 1일(모든 성인의 날) 저녁부터 11월 2일(위령의 날) 저녁까지 만 하루 동안 연령(煙靈)을 위해 대사(大赦)를 얻는 날이었다. 성당 안에 들어갈 때마다 주모경과 사도신경 각 한 번씩 하고 통회하면 대사 하나씩 얻는 때였다. 이에 응해 많은 교우들이 성당을 들락날락 성당 문턱이 달았다. 나 역시 1백40번을 하고 나니 무릎에 멍이 들었고 허리가 뻣뻣해졌다.
극기(克己)라는 용어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와서 돌아다보니 아무래도 그때 그 마음씨들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사순절을 지내면서 교회는 회개와 보속을 역설한다. 그것도 공동체 의식을 높인다는 입장에서 실천적 이웃 사랑에 촛점을 맞춘다. 발전적인 가르침이다. 자기 위주의 소극적 신심에서 이웃 재발견의 적극 신심으로 지도됨은 마땅하다. 그런데 실제로 교회 대중 안에는 과도기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랑의 실천에는 순서가 있는 것이다. 자기 충실이 성행되지 않은(정도 문제지만) 이웃 살핌은 또 다른 위선 내지는 군중심리에 불과하다. 주체적으로 보아 자기 사랑의 발돋움에서 이웃 사랑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웃 사랑의 투영이 자기 사랑이지만 실천적 순서는 자기 참사랑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단식제 금육제 공복재와 극기 희생 이런 것들은 교회 전통의 미덕이기에 규정법의 세칙은 변할 수 있더라도 그 정신은 바뀌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그 양상은 변하더라도 그 내면 정신은 기리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순절 동안 단 2회의 단식제도 잘 지켜지지 않으며 1년 내내 금요일마다 지켜지던 금육제는 사순절에 단 7번도 지켜지지 않는다. 물론 바빠만지는 세태 속에 외형적인 것만을 강조해선 안 될 것이다. 그래도 금요일은 주의 수난일이므로 적어도 그 정신만은 보존됨이 미덕일 것 같다. 공복재도 그렇다. 내일 아침의 영성체를 위해 긴긴 밤을 혹시 침이라도 삼킬까봐 조심에 조심을 더했던 순진한 정성들이 없어져가고 있다. 또 극기 희생 같은 용어마저 모르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렇다고 복고주의를 칭송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불합리한 점이 없지 않았던「거룩한 미신들」속에서도 구체적이며 실천적 신앙심이 살아있었던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신앙은 논리타산 이전의 문제이기에 철저히 자기 내면의 반성에로 눈을 돌려봄이 어떨까?
거듭 말하지만 사랑의 실천적 순서는 자기 참사랑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자기 참사랑은 신앙의 기쁨 속에서 이기적 자기(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를 극복 희생시키는 곳에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옛 교우들의 소박한 정성이 새삼 그리워진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