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형입니다. 이름은 로미라 하지요. 나이는 올해로 설흔살이 되었어요. 무슨 나이를 그렇게 많이 먹었느냐고요?
그래요. 사람들은 나이를 나무의 나이테처럼 자람 점으로만 생각하지요. 한살 더 먹으면 이만큼 자라고 한 살 더 먹으면 또 이만큼 자라고….
그러나 우리 인형들은 나이가 곧 주인의 사랑을 말하여 주지요. 한살을 먹으면 한해의 사랑을 받았음이고, 두 살을 먹으면 두해의 사랑을 받았음이고. 우리 인형들은 한살만 먹어도 늙은 축에 끼어요. 그 만큼 아이들은 우리를 곧잘 버리지요. 처음에는 끔찍이도 이뻐하며, 업고 다니고 껴안고 자고 하다가도 며칠 지나면 금방 싫증을 내거든요. 옷을 벗기고, 팔을 빼보고, 나중에는 다리 하나가 없는 병신이 되기도 해서 광속으로 밀려나는 것이 보통이어요. 그런데 나는 30년 동안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고 이 선생님 댁에서 살고 있지요. 그러니까 내가 받은 사랑은 내 나이만큼이나 보이지 않게 쌓여져서 아름다운 그림자 탑을 이루고 있는 거지요. 그러나 그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어요.
이 집의 외딸인 로사언니와의 만남. 그때는 정말 즐거웠었지요. 어찌나 언니가 나를 떼어 놓지 않는지, 나한테 로미라는 이름이 붙여지기까지 하였으니까요. 피아노를 특히 잘 치는 로사언니는 나를 피아노 위에 앉혀놓고 여러 성가 곡들을 들려주기도 하였었지요.
그러던 로사언니가 미국으로 피아노공부를 하러 가게 되어서 우리는 헤어져야 했어요. 그 슬픔을 누가 알까요? 다행히 언니의 엄마와 아빠가 나를 돌봐주어서 슬픔은 이내 가라 앉있지요. 로사언니가 했던 것처럼 일주일에 한 번씩 꼭꼭 목욕시켜주는 두 분.
나는 나이가 들어도 그 모습 그대로 이지만 이 두 분은 차츰 차츰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변해 갔어요. 나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애타게 기다리는 로사언니는 외국에서 돌아올 줄을 몰랐어요. 간혹 로사언니가 연주했다는 레코드판만 오는 것이 있어요. 그러나 그 레코드판을 전축에 걸어 놓고 세 식구가 듣는 기쁨도 적은 것은 아니었어요.
할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숨을 거두실 때도 로사언니의 레코드를 들으면서 였어요. 은하수가 흘러들듯이 조용히 짖어 기다가 소리 없이 멈추던 그날의 음률을 나는 잊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오늘 아침 일입니다. 할머니가 나를 깨우며 이렇게 귀뜸해 주셨습니다.
『로미야! 드디어 로사언니가 온단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게 열리는 연주회에 초청을 받았다지 뭐니? 너도 기쁜 게로구나. 나도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할머니는 나를 목욕시킨 다음에 새 옷을 갈아 입혀주셨어요. 머리를 빗어 주시면서 할머니는 말씀하셨어요.
『언니가 집에 들르지 못하고 연주회장으로 바로 간다는구나. 그러니 너랑 나랑 함께 극장에 가서 만나보자구나.』
극장은 사람들로 가득가득 넘쳐나고 있었어요. 나는 할머니 품에 안겨서 무대 뒤로 갔었지요. 저만큼에 수많은 꽃다발 속에 묻혀 있는 로사언니가 보였어요.
-아, 로사언니.
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렸어요. 할머니한데서 나를 건네받은 로사언니의 눈에도 눈물이 넘쳤어요. 로사언니는 나를 안고 무대 앞으로 나갔어요. 그리고는 나를 예전처럼 피아노 위에 앉혀놓고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모짜르트의 곡을 연주하였어요. 은하수 멀리 멀리 흘러가는 선율… 로사언니가 손을 멈추자, 청중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내주었어요. 로사언니는 나를 안고 답례의 말을 하였어요.
『삼십년 전 전쟁 중에 한쪽 다리를 잃으신 아버님께서 집으로 돌아오시면서 저한테 사다주신 인형입니다… 나의귀국을 애타게 기다리시며 이 작은 인형한데 정을 주고 살다가 하늘나라의 별로 돌아가신 아버님. 그 아버님의 은혜를 이 제사 깨닫게 되어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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