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유유히 흐르고 있다.
치르루 척.
치르루 철썩.
형화가 탄 버스는 출근길의 많은 차들과 함께 뒤범벅이 되어 한강 다리 한중간에 얼마 동안을 정차했다.
다리 입구에서부터 여러 갈래의 길에서 몰려든 각종의 차들이 서로 빨리 가려고 씨름을 시작한 것이 아마 십 분은 족히 지났을 것이라고 형화는 생각한다. 처음 차들이 몰리기 시작했을 때는 저리 비키라는 듯이 모든 차들이 빵빵거리며 크락숀을 눌러댔지만 차가 다리의 중간 지점에 이르니 나란히 줄을 서게 된 그 차들은 이젠 조용히 자기들이 떠날 차례를 기다리는 행렬이 되어버렸을 뿐이다.
행렬의 뒷쪽에서는 아직도 메아리처럼 뿡빵대는 차소리들이 은은히 들려오고 있으나 형화가 차를 타고 있는 무렵쯤은 어느새 가벼운 낮잠이라도 든 듯한 기운이 감돈다.
그렇게 시간이 점차 좀 더 지나니 차 안에서는 여기저기서 출근 시간이 늦어서 큰일이라는 소요가 웅성웅성하는 소리로 커져가기 시작한다.
웅성우성.
무어라고 딱히 들리는 말도 없이 사람들의 소리가 커져간다. 그러다가 우연히도 그 웅성댐의 소리가 일제히 그쳐버린 어느 한 순간의 정적 속에서 형화는 문득 조용한 강물 소리를 들었다.
치르륵 철썩-.
지난 밤엔 무더운 초여름의 끈적거림과 한 주일을 맺는 주말을 정돈해주기라도 하려는 듯 한 차례 폭우가 쏟아졌다.
요란한 천둥과 먹구름、그리고 우렁찬 빗물 소리로 두렵고 정신없던 것과는 달리 월요일 아침의 세상은 온통 청결함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무성해가기 시작하는 나무잎들도、뿌옇게 먼지가 끼었던 버스의 지붕 위도 파랗고 붉은 기와 지붕들도 모두가 상쾌하게 씻겨져 있었다.
해는 벌써 붉은 기운을 읽고 하늘 중간에 떠 있지만 아직도 아침은 완연했다.
형화는 아직도 빗물이 흘러내려간 자욱이 남아있는 유리창을 열어젖히고 그것이 과연 강물 소리일까 귀를 기울였다.
맑게 개인 하늘이 반사된 강물은 분명히 탁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깨끗이 씻긴 듯 청명하게만 보인다.
강은 조금만 물결을 그리며 유유히 흐른다. 그 군데군데에서 볼록하게 솟아나온 물결이 제 힘에 겨워 다시 주저앉을 때 하얀 거품과 함께 치르륵 거리는 파도 소리를 내고 있다.
마치 큼직한 치마폭의 여기적기에 움직이는 무늬를 놓는 것 같다고 형화는 생각하며 귀 기울이는 것이다.
치르륵 철썩.
그러나 그것은 정말 순간의 정적이었을 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지각을 걱정하는 바람에 강물 소리는 어디론가 숨어들고 말았다.
차들은 얼마나 정지해 있는 것인지 아침 햇살이 점차 따가와지기 시작한다.
형화가 출근시간에 찾아 앉는 버스 좌석의 방향은 철마다 바뀐다.
겨울철에는 오늘쪽 여름철에는 왼쪽에 앉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을 형화는 안다. 아침 나절의 해는 항상 오른쪽에서 떠올라 있으므로 겨울에는 따뜻한 것을 찾고 여름에는 햇빛이 없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어쩌다가 오른쪽 좌석에 앉아 햇빛과 씨름을 시작해야 할 형화는 아침부터 옷이 더워져옴을 느끼면서 서서히 온몸에 땀이 배이는 것을 알아냈다.
-에이 그런데 왜 이렇게 차가 안 빠진다지.
형화는 주변 사람들과 합세하여 이제부터 투덜대기 시작한다.
시간은 이렇게 또 십여 분을 흐른다. 차들은 다리 중간에서 크락숀을 눌러대면서 소란을 시작한다.
운전사들은 운전석에서 껑충 뛰어내려 목을 길게 빼고 앞쪽의 동정을 살핀다. 차 안의 회사원들과 학생들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여 차창을 공연히 내다보며 두리번거리기에 정신이 없다.
-어이 거 앞에 무슨 일이야?
저 멀리 뒷쪽에서 내린 운전사가 마치 친한 동료를 앞에 둔 듯이 아무에게나 큰 소리로 묻는다.
-다리 끝에서 무슨 사고가 난 모양이야.
-무슨 사고야?
-나는 모르겠지만 사고는 분명한게 경찰차가 보여.
-거 아침부터 재수없게 사고는 무슨 사고야.
이런 고함 소리들과 함께 성미가 급한 사람들은 차에세 내려 걸어서 다리를 건너기 시작하기도 한다.
뛰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모처럼 시원한 강변을 둘러보며 난간에 팔을 기대고 섰는 사람도 있고 앞차의 동정을 살피며 차에게 내렸다가 다시 고개를 갸우뚱하고 올라서는 사람도 있다. 한강 다리 위는 이렇게 해서 월요일 아침부터 붐비면서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형화는 사무실 책상 위에 쌓인 여러 가지 일감들과 뭐하느라고 지각이냐는 눈초리로 노려볼 최 상무와 김 부장을 생각하며 차에서 뛰어내려 걸어서 다리를 건너는 편이 오히려 빠른 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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