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없었던 나의 첫 전교생활은 강원도 춘천 어느 시골 본당에서였다. 아일랜드인인 본당 신부님은 기도생활과 사목생활에 철두철미、본당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산 표양이 된 분이었다. 가난하기 때문에 하느님을 열심히 믿는 것인지 하느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더욱 사랑하시기 때문에 열심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신앙은 나의 첫 전교활동에 보람과 확신을 준 귀한 경험이었다.
초라하고 조그만 시골 성당에서 전례에 따르는 행사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큰 구경거리가 된다. 특히 손에손에 촛불을 든 성모의 밤 행사 때의 열성적이고 감동적인 성가와 기도 소리는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기에 충분했고 그것을 계기로 신자가 된 이도 적지 않았다. 본당 신부님의 이동 때 나는 富와 물질의 애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산 교훈을 얻었다.
이사 가시는 신부님을 위해 교우들은 큰 마음 먹고(?) 삼륜차를 불렀다. 거름(퇴비)을 실은 후였던지 몹시 냄새가 나는 삼륜차에는 사과 궤짝 크기만한 상자 2개가 달랑 얹혔다. 2개의 상자가 신부님 짐의 전부였다. 2백50리의 험한 길을 이리저리 구르면서 실려갈 2개의 상자를 보던 교우들은 일제히 성당으로 들어가서 마루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가난한 신부와 가난한 교구들 사이에 들었던 정이기에 더욱 슬픔이 깊었던 것이다.
어리둥절한 채 첫 부임지에서 3년 7개월의 임기를 마친 나는 넓고 푸른 바다가 힘과 용기를 주는 동해안의 한 어촌으로 불림을 받았다. 매일매일을 기다림의 불안과 초조 속에서 지내는 그곳 주민들의 생할은 어수선하고 고달픔이 틀에 박힌 삶의 연속이었다. 새벽 4시 어두컴컴한 항구에서 배를 띄운 남편들이 돌아올 때까지 남은 가족들은 걱정 속에서도 잡아온 동태ㆍ오징어 등의 손질로 눈코 뜰새없이 바쁘고 분주하다. 대여섯 살 꼬마에서부터 수족을 쓸 수 있는 노인들까지 동원되는 오징어 손질 작업은 보통 밤 늦게까지 계속, 하루 종일 오징어와 한 가족으로 지내는 것이다. 주일학교 교리시간의 교실 안은 생선 비린내가 주인공처럼 차지한다. 이렇게 영육이 안정되지 못한 이곳 주민들, 그 속에서 교우들과의 생활은 수도자로서의 평탄한 나의 생활 환경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기회를 주곤 했다.
배를 타고 물을 건너 어렵게 교우집을 찾아 방문했을 때에도 영락없이 바쁘기만 한 그들의 일손은 멈출 수 없었고 결국 나는 방문 그 자체로 만족해야 하는 속수무책의 바보였다.
그러나 비록 대하는 나누지 못했어도 바쁘게 생활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전교수녀로서의 사명감을 뿌듯이 느낄 수 있었다.『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요.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소. 그것을 마리아께서 빼앗아서는 안 될 것이요.』
루까복음 10장 42절의 성경 말씀처럼 내가 차지한 몫은 아무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귀중한 것임을 깨달은 순간들이기도 했다.
주일미사에 한번 참여키 위해 왕복 1백여 리의 험한 시골길을 걸어야 하는 이들의 신앙심은 그래서인지 남다른 데가 있었다. 한 끼 두 끼 매번 쌀을 사다 먹어야 하는 빈곤한 가정에 한 끼도 빠짐없이 신학생들을 돕기 위한 성미를 모아 바치는 할머니의 정성이 그러했고 병원에서의 치료는 고사하고 약 한 첩 못 사먹고 병고에 시달리는 불쌍한 처지의 중환자가 자기보다 더 가난한 형제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그러했다.
가난에 찌들고 생활에 시달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풍요한 신앙인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는 이들의 자세는 신자들을 방문키 위한 서투른 산길에서 부르튼 내 발을 낫게 하는 약이 되었고 갈증으로 갈라진 입술을 축여주는 시원한 샘물이 되기도 했다. 언제 어느 때의 부르심에도 결코 환경이나 조건을 계산하지 않고『내게 힘을 주시는 분을 통해서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한 바오로의 말씀을 마음의 명패로 삼게 된 지금의 나는 바로 그들이 있게 한 것이다.
물질적인 가난을 극복하는 사람을 병고나 고통을 이겨나가는 사람들 하느님을 위해 아낌없이 사랑하고 나눌 줄 아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나의 전교생활의 등불이 되었고 밑거름이 되었다.
◆지금까지 약목본당의 고희상씨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이번호부터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윤가브리엘 수녀님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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