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피난지 대구에서 실명의 위기에 놓이기 시작한 때는 겨우 3살의 어린 나이였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별로 높지 않은 툇마루에서 떨어져 경기를 하더니 병원에 다녀와서는 곧 회복이 되어 예사롭게 생활하였다 한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왼쪽 눈에 백태가 끼었고 5살 때는 각막 이식을 받으라는 통지를 받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수술은 성공했으나 서서히 다시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각막 이식한 눈동자가 아래로 갈라져서 무엇을 보자면 고개를 외로 꼬아야 겨우 한 가닥의 빛을 볼 수 있었다.
아니다! 한 가닥의 빛이라니 …
나는 다시 일곱 살 때 썰매 모서리에 고꾸라지면서 그 귀중한 한 가닥의 빛마저 놓쳐 버리고 만 것이다.
울부짖는 부모님에게 의사는 의안을 끼울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고 선고해 왔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을 어쩌랴. 나는 의안을 끼고 퇴원하였다.
그때부터 나는 방 한 구석 벽을 향하고 앉아 하루 종일 장난감이건 뭐건 손에 잡히는 대로 뜯어 보고 맞추고 두드리고 튕기며 곧잘 소리를 내는 버릇이 생기기 시작했다.
식구들이 나를 측은히 여기고 가슴 아파하는 것에 비해 당사자인 내가 스스로 불행을 느끼지 못하고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어린이 탓도 있으려니와 온 가족들이 백방으로 나를 애틋히 보살펴 주었기 때문이리라.
내가 하는 일은 모두 옳았고 내가 하고자 해서 안 되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집안에 군림하고 있었다.
그러나 9살 때 내가 맹아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나는 좌절감과 충격에 빠져들고 있었다.
내가 밥을 떠도 아무도 반찬을 놓아주지 않았고 출입할 때도 아무도 내게 신을 놓아 주지도 신겨 주지도 않았다.
기숙사에는 재주 많고 영리한 아이들이 많아서 나를 칭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이제까지 혼자 우쭐댔고 우리 부모님은 내가 불구자인 까닭에 위로와 동정을 부어댔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뒤틀어지기 시작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토요일이었지만 가족들을 보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 쓸쓸히 기숙사에 남아 있는 때가 많았다.
나는 이 세상에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불구자, 두고두고 손가락질 당하고 천대 받을 불구자임을 생각하고 노끈을 찾았다.
『죽자, 죽어서 다른 세상에 가도 맹인일라구. 거기선 나도 남처럼 눈을 뜨고 살 걸. 아름다운 것도 보고 신나게 야구도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노끈을 목에 감고 발 밑에 돌을 찼지만 노끈은 끊어지고 다시 맹인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이러는 사이에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철이 나면서 차츰 성적도 오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음악에의 집념을 모아 뜻을 같이 한 친구들과 맹인 보컬 클럽을 조직하게 되었다. 우리는 앰프까지 장만해 주신 아버지의 격려로 피눈물 나는 연습을 계속했다. 처음에는 반대하면 학교 측도 악단이 조직되자 후원을 아끼지 않았고 지방의 맹인학교를 순회하며 보람을 찾고 있을때 호사다마라고 생명 같은 앰프를 잃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택시에 놓고 내린 앰프 … 그러나 우리 둘 맹인이 어떻게 택시의 번호나 색깔을 알아서 찾아볼 수나 있을 것인가. 나는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절망해 있을 때 맹인학교 여학생들은 호주머니를 털어 앰프 살 돈을 모금해 왔다. 비록 모습은 볼 수 없어도 고운 그 마음과 목소리를 언제까지나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럴 즈음 나는 자립하려는 생각으로 맹인사회 아닌 더 넓은 곳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나는 두 번째 신인가수 콘테스트에 응했고 작곡을 하는 김준규씨의 지도로 연습을 계속해서「검은 안경」이란 첫 음반을 내놓게 되었다.
그 후 산레모 가요제에서 힛트했던「천구백 사십삼년 삼월 사일 생」을 불러 가수로서 기반을 닦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후 YMCA 리사이틀에서 용기를 얻은 나는 라디오와 텔레비젼에 출연을 시작했다. 이전에는 맹인이라는 여건 때문에 얼마나 출연에 기피를 당해 왔는가.
그러나 이제는 불구자라고 한탄하지 않는다. 성한 사람들의 눈 대신 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힘있게 살아갈 것이다.
『우리 함께 간다네 푸른 초원 가슴에 안고/서로 손을 잡고 시원스런 노래하며/우리 함께 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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