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가 시작되었다. 사제는 제단 앞에 서 있다. 신도들 및 복사는 각기 제 자리에서「전능하신 천주와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과연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지었나이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하고 기도를 올린다. 그리고「탓」이라는 말이 나올 때면 가슴을 친다.
인간이 제 가슴을 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 번 실제로 느껴 보자. 하지만 느끼려면 옳게 쳐 봐야 안다. 그저 옷 위를 손가락 끝으로 톡톡 두드리는 식으론 아무 소용이 없다. 주먹을 쥐고 가슴을 제법 쳐야 한다.
예로니모 성인이 사막에서 무릎을 끓고 손에 돌을 움켜쥐고 떨면서 가슴을 때리는 그림을 본 사람도 혹시 있을 것이다. 분명 타격이지 그저 멋있는 몸짓은 결코 아니다. 우리 내심세계의 대문을 두드려 열어 제치는 동작이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그 의미를 알 수가 있다. 본래는 생명과 빛과힘과 활력에 가득한 세계인 터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안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가. 온갖 의무ㆍ애로 결단 등 절실한 요구로 가득하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별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죄책도 더러 쌓여 있지만 그다지 마음에 거리끼지를 않는다.『우리는 삶의 한가운데에서도 죽음에 둘러싸여 있다』고는 하나 별로 실감이 안 난다.
이런 상황에서 하느님의 음성이 우리를 부른다.「깨어 일어나라. 네 사정을 살펴라. 정신 차려라. 마음을 돌려라. 참회하라」. 가슴을 치는 동작을 대신해 준다. 가슴을 뚫고 들어가 그 안의 세계를 경각하여 깨워 일으키고 눈을 뜨게 하여 하느님을 향하게 한다.
이 내심의 사제가 일단 제정신이 들면 자신이 그 얼마나「제 탓으로 제 탓으로 제 큰 탓으로」성실한 삶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고 본분을 잊었던가를 보게 된다. 이렇게 죄책에 묶이고 보면 나갈 길이라곤「하느님과 성도 공동체에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얻었나이다」하고 여지없이 고백하는 수밖에는 없다.
그러면 내심이 하느님 편을 들어 스스로를 단죄하게 된다. 자신에 대해 하느님이 생각하시듯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죄에 분노하여 자신을 침으로써 벌하는 것이다. 인간이 제 가슴을 친다는 것은 결국 이런 것을 의미한다. 자신을 깨워 내심의 세계를 경각함으로써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게 한다. 하느님 편에 서서 자신을 벌한다. 한마디로 성찰과 참회와 회두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사제 신도 할 것 없이 제단 앞에서 죄를 고하면서 가슴을 치는 것이다 또 성체를 모시기에 앞서「주여, 내 안에 주를 모시기에 당치 못하옵니다」하면서 성체를 우러러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기도문을 바치면서「주여, 죄인을 들어 허락하소서」하고 우리 죄과를 고소할 때에도 그렇다.
우리는 가슴을 칠 때 그 근엄한 본뜻을 잊지 말라. 뉘우치는 마음에 지성과 자책을 독촉하는 행위임을 늘 명심하자.
〈계속ㆍ분도출판사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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