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매달리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죄 많은 우리는 구원의 기쁨을 맞이한다. 인간의 범죄와 배신에 지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보답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구원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의외로 관심도 없이 그저 현실적으로 영원한 생명에는 별로 흥미가 없다고만 할 것인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나타나는 하느님의 아들이 말하는 구원의 복음은 복음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구원신비는 현실생활에 아무런 보탬도 안 된다는 것이다. 죄의식도 없는 것이고, 하느님과 화해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
현세의 일반 관심사와 같이 감동과 각성, 실망과 체념, 흥분과 분노를 느끼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역사적 중대사일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사건은 과거의 일이지만 그리스도의 빠스카의 신비는 과거지사가 될 수 없다. 언제나 미래를 향한 현재의 문제이다. 아니어떤 사람에게는 지금 당장에 긴급과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구원의 신비도 이를 체험하려는 일념 없이는 단순한 생각만으로 끝나는 신앙이되고 말 것이다. 행동으로 믿음을 보여줄 수 있게(야고보 2ㆍ18) 사순절을 착실히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결정적인 단계가된 우리 구원의 현실을 새로이 음미하며 구급환자에게 응급 처지의 필요성을 절감하듯이 우리의 구원과 자신의 결함에 대해서도 뒤로 미룰 수 없는 일임을 지각해야 한다. 시간과 공간은 쉴 새 없이 미래를 먹어들어가고 있다.
무한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유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께서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다. 영원한 것을 제시한 복음이다. 신앙생활이란 현세에 몰입하지 않고 영원한 것을 지향하는 출발점에서 내세를 희구하는 생활일 것이다. 자기 억제도 이의 한 가지 표현이며 선행은 더욱 적극적인 표현이라 하겠다. 사순절은 자기 극복을 실행할 시기이다. 자신이 흙으로 돌아갈 것임을 생각하며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정화를 기하는 것은 안일한 현실에서 만족감과 풍요한 생활에 대해 유혹을 경계하는 일이다.
옛 사람들은 자기 억제를 위해 고행을 즐겼다. 그러나 이러한 고행이 없이는 구원될 수 없다고 할 것인가. 그리스도는 불가피한 인고 외에 스스로 자신을 학대한 기록은 없다. 본시 인간은 나약하므로 인내에도 한도가 있다. 지나친 고행은 신앙을 부담스럽고 위태롭게 할 뿐이다.
하느님이 요구하시는 건 고행보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다. 그리고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사야 58ㆍ6~7 참조)만일 고행에 열중한 나머지 불쌍한 이웃을 못 본 채 한다면 바로 바리사이의 신앙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모상 따라,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이 비참한 상태에 놓여지게 해서는 안 된다. 보다 나은 세계, 보다 의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전심해야 한다. 사랑은 누구나 모든 이의 고통과 비참을 함께 나누고, 인류 가족을 짓누르고 있는 갖가지 비참에 대하여 공통 책임을 자각하고 그 해결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은 나 하나만을 구원에 부르시고 계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당신의 백성으로서 구원하시려고 계획하셨다. 따라서 연대적인 책임의식을 갖고서 둘레의 모두들 하느님께 이끌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나 하나만을 위한 참회와 속죄행위는 하느님 앞에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의 행위를 요구한다. (요한 12ㆍ8 참조) 자선은 동냥이 아니라 오로지 형제적 일치의 표현이어야 한다. 특히 사순절 동안 각종 낭비를 삼가고 통일된 공동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형제자매에게 베푼 진정한 도움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 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다(마태 25, 35~36)라고 하신 말씀에서 친히 보여주실 것이다. 아무도 자신의 하느님과 형제의 급한 청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끝으로 사순절 동안 복음적 사랑을 실천에 옮기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중 자기 몫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형제적 사랑과 정의와 행복이 자라날 것이며 주님의 부활을 맞을 땐 진실된 기쁨을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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