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오 12세의 교황직은 극히 혼란한 시대 속에서 시작됐다. 뭇솔리니는 35년과 36년 사이에 이디오피아를 공격, 점령했으며 스페인 내란이 39년 3월에 끝난 때였다.
또 38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의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를 침범했으며 39년 4월 뭇솔리니는 알바니아를 침략, 병합함으로써 전운이 짙게 깔리던 때였다.
삐오 12세는 자신을「평화의 사도」로 선언하고「평화의 정의를 위한 사업」임을 모또로 내세웠다.
국무성 장관 시절의 자신을 광범한 외교적 경험을 되살려 삐오 12세는 국무성의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교황은 루이지 마글리오네 추기경을 국무성 장관에 기용, 자신을 보필토록 했다.
1939년 부활절 메시지를 통해 교황은 일부 국가들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 박탈하고 있음을 개탄하면서 모든 국가가 평화를 보존토록 축구했다.
동년 10월 교황으로서 처음 발표한 칙서「숨미ㆍ뽄티피까뚜스」에서 삐오 12세는 독일과 러시아가 폴란드를 분활 점령했음을 지적하고 나치즘과 공산주의의 무자비한 침략행위를 단죄했다.
이어 39ㆍ40ㆍ41년의 크리스마스 메시지와 43ㆍ44년 추기경들에 행한 연설에서 교황은 종교의 궁극적인 가치를 강조하면서 약소국가와 집단의 보호를 강력히 호소했다.
급기야 1940년 6월 이태리가 전쟁에 가담하면서부터「바티깐」시국의 외교활동은 많은 제약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삐오 12세는 엄격한 중립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외교 노력을 계속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교황의 유일한 희망은 유태인들을 구출하는 일이었다.「로마」에 있는 유태인들을 제거하려는 조치는 43년 나치군이 이 도시를 점령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수천 명의 유태인들이「바티깐」시국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들은 각 성전과「바티깐」성 밖의 교황청에 속한 건물들 안에 피난처를 마련했다. 이들 외에도 1만5천여 명의 유태인들이「로마」에서 10마일 떨어진「까스뗄간들포」의 교황 저택에 모여 들었다.
당시 일반인들이「바티깐」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엄격한 구비 조건이 요구됐으나 교황 삐오 12세는 피난처를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종족과 피부색 그리고 종교의 구별없이 모두 용납했다.
이 때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전한다. 1943년 9월 당시「로마」의 최고 랍비로 있던 죨리 박사는 나치군들로부터 다음날 정오까지 1백만 리라와 금 1백 파운드를 가져오도록 강요 받았다.
만일 이를 지키지 못하면「로마」에 있는 유태인 집단을 해산시킨다는 것이었다. 유태인들은 백방으로 노력해 봤으나 헛수고였다.
다급해진 죨리 박사는 마지막으로 교황에게 호소했다. 이를 들은 교황은 단 하루만에 속상금을 지불했다. 교황은 그 금이 어디서 나왔는지 밝히지 않았으나 교황은 속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성작들을 녹이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죨리 박사는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56년에 한 성당에서 별세했다.
속상금을 받은 지 한 달이 지나 유태인들에 대한 나치군의 공격은 재개됐다. 유태인 가정과 상점들은 모두 폐쇄되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혹은 투옥되고 많은 수가 포로 수용소로 보내졌다.
이와 곁들어 나치군에 대한 교황청의 강력한 항거는 오히려 더 많은 희생자를 속출케 하는 결과를 빚었다.「로마」전역의 모든 성직 수도 평신도들은 위협을 무릅쓰고 유태인들을 성당이나 수도원 기타 교회기관에 대피시키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그때의 피난처는 1백80곳이 넘었으며 수용된 유태인 수는 5천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1944년 2월 연합군이「로마」로 진격해 올 때 히틀러는 삐오 12세에게 독일로 피신할 것을 권했다. 일언지하에 거절한 교황은 연합군의 개선을 열렬히 환영했다.
같은 해에 마글리오네 추기경이 사망하자 삐오 12세는 국무성의 일을 현 교황 바오로 6세인 죠반니 몬시뇰과 타르디니 몬시뇰이 교황을 보좌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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