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 하오 3시 골절환자의 수술이 막 끝났을 무렵 응급실로부터 환자가 왔다. 30분 전, 전기톱에 대퇴부가 절단된 환자가 도착한 것이다.
다시 휘경동 부림목재 현장에 내버려진 다리를 주워오는데 20분, 나는 구두와 내의, 양말을 찢고 환부에 묻은 톱밥을 씻어 낸 뒤 소독포로 싸서 저온실에 보관하도록 지시한다.
이미 1년 전부터 기재를 도입했고 수차에 걸친 동물 실험과 절단된 손가락의 봉합으로 이 미세혈관 수술은 가능하리라고 직감하면서 6명의 수술 팀은 긴장된 수술을 시작했다.
피가 굳지 않도록 항응고제를 혈관에 관류 세척하며 잘려서 으깨진 괴사 조직을 도려낸다. 다리가 절단되면 피부와 근육조직은 수축되어 뼈만 하얗게 드러나게 마련이므로 드러난 뼈 약 5㎝를 톱으로 단축시킨다. 그리고 송곳으로 뼈를 뚫고 금속관을 연결시켜 나사못으로 죈다.
수술하기 편하게 동맥과 정맥을 끌어내 놓고 혈관 봉합 확대경을 끼고 지침기를 손에 든다. 끝이 머리카락을 집을 수 있을 만큼 날카로운 지침기로 바늘을 잡고 봉합을 시작한다.
동맥벽의 두께는 약 0.8mm, 정맥은 그 절반…머리카락 같은 바늘에 육안으로 보일락말락한 봉합사를 꿰어 각각 30바늘 봉합… 실이 내벽에 노출하면 수술은 실패다. 조그만 돌출물이 하수구를 막히게 하듯, 미세한 실의 노출이 마침내 혈관을 막히게 하기 때문이다.
세 시간의 긴장된 수술이 끝나고 발가락에 펄스모니터를 연결한다.
혈관은 이어졌으나 잘린 다리는 퍼렇게 질렸을 뿐 아직 피는 통하지 않는다.
환자의 다리에 지혈대가 굳게 감겨져 있기 때문이다.…지혈대를 풀면 혈류는봉합된 다리로 흐를 것이다.
경쾌한 신호음을 내며 펄스모터가 그라프를 그려 주기를!
잘렸던 다리에 피가 통하고 화색이 돌며 따뜻해지기를!
드디어…드디어 삐이삐이 약하게 들려온 신호음은 씩씩하게 울려퍼진다.
그라프는 정상이었고 수술 팀은 감격했다. 그러나 잠시 후-
정맥 부분에 누혈이 있다. 피가 새는 부위를 찾아야 한다.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던 의사들의 비난이 다시 스쳐간다.
『무모한 모험이지 역시 무리야』
『선진국에서도 어려운데 우리 기술로 감히 해낼 수 있을라구』
『봉합했다. 실패하면 혈관을 자르고 또 실패하면 또 자르고 그러다 시간이 경과하면 조직이 썩을 텐데』
『조직이 썩는 게 문젭니까. 마취를 오래하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합니다.』
다시 지혈대를 감고 확대경을 낀 뒤 누혈된 부분을 세 바늘 봉합한다.
정상적인 펄스모니터… 혈류는 통하고 누혈도 없다. 이제 항응고제를 떨어뜨리며 근육과 근육을 봉합해야 한다.
앞무릎을 펴게 하는 4개의 신근과 뒷무릎을 구부리는 4개의 굴곡근을 절개하여 각각 2개씩만 봉합한다.
이때의 큰 난점은 피의 응고를 막기 위해 항응고제를 쓰는 동시에 출혈을 막기 위해서 지혈이라는 상반된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어서 신경 봉합이다.
마취가 오래 계속되면 환자에게 영향이 있을 것을 고려해서 미세신경 봉합은 약 3주 후 완전히 다리가 연결된 뒤에 하기로 결정한다. 단지 우선그 방향의 전환 케이블을 연결하듯 굵은 것 몇 바늘만 연결해 놓는다.
신경 봉합이 끝나고 상처를 닫는다.
혈종 방지를 위해 고무 호스를 꽂고 지혈대를 다시 푸니 혈류가 다리에 통한다.
이제 남은 수술은 붓는 것을 막기 위한 근막 절개수술과 석고 반기브스…
이런 수술은 미세혈관 수술과 같이 긴장감이나 엄숙함이 수반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공인가?
정녕 이 수술은 성공한 것인가?
자연이여! 나는 당신 앞에 한 발 다가섰습니다. 당신의 법칙을 또 한 가지 과학적으로 개척하고 정복했습니다.
나는 어린애처럼 기쁩니다. 어린 아이가 아버지 앞에 장한 일을 해내고 칭찬을 받는 것처럼 나는 당신의 법칙 앞에 무한한 희열을 느낍니다.
통금시간에 앰브런스로 집에 돌아오면서 나는 이 환자를 완전히 회생시키기에는 아직 긴 시간 동안 불안을 견디어 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갑작스런 이상이 오지나 않을까 그 밤 잠을 못 이루고 날을 밝힌 채 다시 의료원으로 나간다.
『윤 박사 수고했소. 획기적인 업적이요. 이런 미세혈관 수술은 1962년 미국에서 성공한 이래 63년 중공에서, 65년에 일본에서 성공한 분야가 아니오. 이젠 우리도 적어도 정형외과 분야에서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게 아니겠소…』주어진 기회와 기재 그리고 최선을 다해 자연법칙에 접근시킨 것뿐인데 여러분들의 치하에 오히려 민망스럽다.
나는 이 기회에 불의의 사고로 사지의 일부가 잘렸을 때 당황하지 말고 잘린 부분을 깨끗이 씻어서 얼음을 채워 나일론 봉지에 넣어 즉시 가져온다면 회생시킬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고 싶다. 얼마 후 정신이 든 환자는 다리가 잘린 줄 알고 흐느껴 울다가『아니, 저게 뭐지…저기 걸려 있는 게…저건 발가락 아냐? 분명히 내 왼다리는 잘렸는데…전기톱에 잘렸는데…
어떻게 매달려 있지…』
환자는 수술 경과와 펄스모니터의 정상적인 그라프를 바라보며 감격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쇠토막은 산소로 땜질을 한다지만 어떻세 댕겅 잘린 다리를…으흐흐흑…』
소식을 듣고 상경하신 아버지께서도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다.
『내사 안적 어린앤 줄로만 알았는데 그런 큰일 했다카이 기특한 일 아이가. 앞으로도 겸허한 마음으로 계속 정진하는 기라! 불우한 산업 재해를 입은 사람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성한 사람으로 만들어 모두 함께 살면 하마 안 좋게나 아비가 법을 전공해가 억울한 사람 구해줬듯 니 인술로 불우한 사람 구해 준다카믄 그게 곧 아비의 뜻을 잇는 거고 효도하는 길 아니겠나! 』
불구를 보았을 때 언제난 가슴이 아팠다. 어머니의 권유로 의과를 지망할 때도 그래서 거역하지 못했는지 모른다.
인턴ㆍ레지던트 시절 절단 환자가 오면 속수무책으로 뒷처리만 해 주고 불구로 내보낼 때 얼마나 안타까왔던가!
나는 아버지 말씀대로 계속 정신할 것이다. 좋은 기재와 과학적인 분석을 통한 기술로 최선을 다해 환자를 대하고, 한편으로는 후배들을 가르침으로써 우리나라의 정형외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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