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이었다. 나는 산마루까지 올라가서 뒤를 돌아보았다. 저 아래에는 호수가 보이고 사방에는 큰 산들이 새벽빛에 고요히 서 있었다. 모든 것이 그토록 맑았다. 하늘은 높고 그 아래 잘 생긴 가지를 뻗은 나무들은 싱싱하였다. 그리고 나 자신 하도 밝은 기쁨이 마음에 솟구쳐 눈에 안 보이는 소리 없는 샘이 솟아올라 모든 것이 빛과 공간으로 떠오르지 않는가 하였다.
그때 나는 한 인간의 마음이 정말 넘쳐 흐르게 되면 그 자리에 서서 무한한 신이시며 빛의 아버지이시고 사랑 그것이신 하느님을 우러러보면서두 팔을 그릇처럼 펴 들고 거기 고요와 빛에 잠긴 세상 만물을 모두 담아 바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럴 때면 두 손이 이루는 그릇에서 모든 것이 조촐하고 거룩하게 하늘로 올라가는 듯이 느껴지리라.
그리스도께서는 일찌기 마음의 산머리에서서 당신 사랑과 한뉘를 끝까지 다하는 제물로 아버지께 바치지 않으셨던가. 그리고 그 산머리의 앞턱은 아브라함이 희생을 바치던 모리아산이 아니었던가. 그에 앞서 왕들이 사제가 되어 속죄의 희생을 바치던 곳이 아니었던가. 또 그보다도 훨씬 먼 저 태고에는 아벨의 제물이 티없이 곧장 하늘로 타오르던 곳이 아니었던가.
이 산머리는 언제나 높이 솟아있고 신성한 두 손은 언제나 퍼져 있다고 제물은 언제나 하늘로 오르고 있다.
그것은 사제가 아무 보잘 것 없는 일꾼인 사람으로서가 아니라-사제로서 제단에 서서 성반(聖盤)에 흰 제병을 얹고 두 손으로 바칠 때마다 그렇다.「거룩하신 성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천주여, 주의 이 부당한 이 종이 무수한 죄와 모독과 또한 여기 둘러있는 모든 이를 위하여 나의 살아계시고 참되신 천주께 드리는 이 제물을 받아들이시어 나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구원이 되게 하소서」
〈계속ㆍ분도출판사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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