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길」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언제나 무언(無言)의 말을 던지고 있다. 어떤 성화 앞에서는 마음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가 하면 어떤 성화 앞에서는 말없이 묵묵히 서 있기만 한다. 어떠한 영신적 체험을 통해서 충동이나 감동을 받으면 영혼은 갑자기 말하기 시작한다. 완전히 자신의 모든 체험과 고통 그런 회의와 절망을「십자가의 길」안으로 안고 들어간다면 생각지도 바라지도 못했던 빛과 위안을 받는다는 것을 가끔 체험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묵상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의미를 말해주고 있다. 첫째로 주님이 당하신 고통을 우리로 하여금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가고 주님과 함께 짊어진다. 그러면 구세주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또 그 반면에 우리의 잘못이 얼마나 큰지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통회하는 것을 배우고, 깊은 내적 회개를 위한 은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두 번째로「십자가의 길」은「극복함을 배우는 학원」이다. 주님이 당하신 영혼과 육신의 쓰디쓴 고통을 보는 동시에 주님은 하느님과 우리에게 대한 사랑으로써 그 고통을 이겨내셨음을 또한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 비슷하도록 배우게 된다.
기도하는 자는 각 처(處)에서 자기 자신의 생활을 다시 발견하도록 해야 한다. 즉 자신이 매일매일 당하는 어려움을 주님의 고통과 일치시김으로써 고통을 단지 짊어지는 것만이 아니고, 극복해낼 수 있는 이해력과 힘을 받도록 해야 한다.
불의한 심판에 극심한 심적 고통을 당하시는 주님(일처)은 우리들도 생활 안에서 불의한 것을 당할지라도 하느님의 지혜로운 뜻에 의지하여 묵묵히 지고 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어깨에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에게서 우리는 고통이 닥쳐오면 굳은 결심 속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각오가 되어야 함을 배울 수 있다.
주님은 넘어지셨으나 다시 일어나셨다. 모든 십자가가 우리 힘에 겨웁다고 느껴질 때에 우리는 기진하지 않도록 힘을 얻는다.
우리가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고려하고 사랑하는 것까지 극복해야 한다면 우리는 즉시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서서 우왕좌왕하게 되며 예수가 그의 어머니에게서 떠날 때처럼 우리에게서 어려운 희생이 요구될 것이다.
「시례네」의 시몬은 주님을 도와주도록 강요 당했다. 우리는 쉽게 실망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며 다른 이의 도움이 없이도 고독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배우는 것이다.
하느님의 진정한 자유 안에서 우리는 예수가 베로니까의 보잘 것 없는 봉사를 같이 주셨음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늘 자신의 괴로움을 잊고 다른 이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인간들의 배은망덕함이 주님으로 하여금 다시 한 번 땅 위에 쓰러지도록 짓누른다. 그러나 이 같은 사람들을 위해 그의 사랑은 고통을 당한 것이다. 사랑은 예수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것은 우리도 남을 위해서 고통을 바친다면 그들을 위한 축복과 강복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다음 회에서는 예수가 진정한 자유에서, 예수 자신이 극심한 어려움 중에서도 불구하고 자신의 파견과 사명을 조용히 이행하며, 또한 울고 있는 부녀자들을 위로해 줌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사명에 충실하고 어려울 때에도 흔들리지 말도록 경고하는 것이다.
예수는 다시 기진맥진하여 세 번째 다시 넘어지셨다. 우리는 결코 약하다고 주저앉아서는 안 되며 좋은 뜻을 갖고 계속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들은 예수의 옷을 빼았아 갔다. 우리도 예수처럼 명예나 체면을 잃은 모든 어려운 순간에 꼿꼿이 서서 하느님께 매달려야 한다.
이제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예수는 참고 견디며 십자가 위에 달려 있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도하느님과 함께 인내해야만 하는 이 같은 순간이 우리에게도 올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중개자의 고통」의 신비를 선포한다. 열매를 맺기 위해 땅에서 썩어야만 하는 밀알은 우리가 십자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경고하며 또한 모든 고통은「거룩한 씨」임을 이해하도록 우리를 가르친다. 무덤은 성 금요일 다음에 부활이 따른다는 사실을 우리에게도 선포한다. 이같이 십자가의 길은 우리의 실존이 항상 몸 담고 있는 생활과 고통의 성(聖)학원인 것이다.
「십자가의 길을 기도할 때 책을 사용하는 것도 좋겠으나 그보다는 빈 손으로 나아가 자신의 생활과 더불어 모든 어려움을 주님의 고통의 빛 안에 의탁하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묻고 또한 필요한 대답을 얻는 것이 더 훌륭한 기도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매일매일의 어려움을 실망하지 않고 용감하게 극복해 나가야 한다. 이 같은 은총을 받기 위해서「십자가의 길」은 큰 도움이 될 것이기에 사순절 동안만이 아니라 평시에도 종종 묵상 기도함이 좋을 것이다
(이 글은 로마노 과르디니의『주님의 길』을 참조하였음을 밝힌다. 필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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