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축일을 맞이하여 여러분 모두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Ⅰ. 부활의 의의
그리스도는 당신 친히 미리 말씀하신 대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를 믿고 전하는 것이 사도들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가 선교하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뜻하는 바는 물론 그리스도만의 부활이 아닙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영생을 얻는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부활하시고 이것이 우리를 위해서는 하등 의미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입니다』(요한 11. 26) 예수 친히 하신 이 말씀대로 그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부활하여 영원히 살 것입니다. 사도들이 복음 선포에서 강조하신 바가 바로 이것이요 교회의 신앙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오로는『예수를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리신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의 속에 계시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죽을 목숨까지도 살려주실 것입니다』(로마 8ㆍ11) 또『우리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예수와 함께 생명의 나라로 데려가실 것을 믿습니다』(데살 前 4ㆍ14)라고 거듭 강조하십니다.
이처럼 성경을 보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다는 사실을 사도들은 언제나 명백히 말씀하십니다. 그분들은 이 부활의 신앙을 증거했을 때 반대자들로부터 모진 박해를 받았고, 결국 그 때문에 모두 순교했습니다. 사도들뿐 아니라 그 뒤를 이은 모든 순교자들의 증거가 또한 한결같이 이 신앙에 입각해 있습니다.
주님의 수난과 부활은 실로 교회가 나날이 고백하고 복음 선교로써 전하는 신앙의 신비 자체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미사 때『주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 주의 죽으심을 전하며 주의 부활하심을 굳세게 믿나이다』라고 힘차게 그 신앙을 고백합니다.
Ⅱ. 부활신앙의 합리성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물론 우리의 가르침도 헛되고 믿음도 헛됩니다. (Ⅰ꼬 15ㆍ14) 뿐더러 부활 없으면 인생 자체가 헛되고 (Ⅰ꼬 15ㆍ32 참조) 세상 만사가 헛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이 없으면 모든 것은 결국 죽음으로 끝나고 말기 때문입니다. 믿기 힘든 것은 실은 부활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사랑도 진리도 정의도 자유도 (목숨 바쳐 지킨 모든 가치, 참되고 아름다운 모든 것이) 끝내는 죽음과 허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단정하는 것이 더 어렵고 더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인간에겐 완전한 자유와 해방, 구원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이 더 큰 모순입니다. 이것은 삶 전체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의미가 있어야 하고 이는 진실해야 하며 빛과 생명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中略)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수난과 부활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을 웅변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실로 우리를 위해서「죄가 되시고」그 죄의 저주 속에 죽으셨습니다. 이는 오직 우리 구원을 위한 것이고 그를 믿는 모든 이가 당신과 더불어 당신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Ⅱ꼬 4ㆍ14 Ⅰ꼬 15ㆍ12~22 참조) 하느님은 이렇게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이 같은 사람이 실패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무위와 도로로 끝날 수는 없습니다. 이 사람이 죽음에 질 수는 없습니다. 사랑은 죽음만큼 강할 뿐 아니라 죽음을 이기고 무덤 속에서 생명을 솟구쳐올릴 만큼 강합니다. 만일 하느님의 사랑이 죽음에 진다면 그거야말로 논리에 위배됩니다. 그런 하느님은 니이체의 말대로 죽은 신입니다. 죽은 신은 신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참혹히 못 박혀 죽었을 때 모든 것은 끝장 난 것 같이 보였습니다. 누구보다도 그에게 구원의 모든 희망을 걸고 있었던 제자들은(루까 24ㆍ21) 절망에 젖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를 십자가에 죽인 유태 지도자들은 죽은 자도 두려웠던지 굳게 닫힌 무덤들을 로마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인장으로 봉인하고 경비병을시켜 무덤을 단단히 지키게 하였습니다.
(마태 27ㆍ62~66). 그들은 진리와 정의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내심 두려워 했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이를 영영 죽음 속에 매장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심으로 사도들의 절망과 불신도 깨뜨렸고 원수들의 邪惡과 물리적 힘도 깨뜨렸습니다. 진리는 반드시 살고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에게 완전한 해방과 자유, 구원을 가져다 줍니다. 인간뿐 아니라『모든 피조물도 부패의 쇠사슬에서 풀려나서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에 참여할 날이 올 것입니다』(로마 8ㆍ21).
Ⅲ.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과 증거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는「영적인 몸」(Ⅰ꼬 15ㆍ44)으로 우리 안에 현존하십니다. 우리의 행복과 평화, 선행과 가치 속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나약, 우리의 죄 우리의 고통과 비참 및 우리의 죽음 속에까지 현존하십니다. 우리를 이 모든 멍애와 질곡에서 해방시키고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믿는 이 안에는 이미 부활 생명의 씨가 심어져 있고 우리의 속에는 이미 영원이 움트고 있습니다. 우리도 육체적인 몸으로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마지막 날에『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육체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갑니다.』(Ⅰ꼬 15ㆍ42~44) 때문에 믿는 이에게는 죽음이 아니요 생명으로 옮겨가는 관문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하여 어디서보다도 먼저 당신의 몸인 교회에 현존하십니다. 이 교회의 모든 전례와 성사 안에 그리스도는 생명의 말씀, 생명의 빵, 해방과 부활의 주님으로 현존하십니다. (전례헌장 7 참조). 교회는 실로 이 사회와 역사 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요 이 사회와 역사 속에 메시아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곧 우리들은 어떻세 부활을 증거할 수 있습니까? 메시아가『이 모든 고난을 겪어야 그의 영광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루까 24ㆍ26) 오늘의 교회인 우리들은 부활하신 후「엠마우스」로 가시는 길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과연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기 때문에 하느님은 그를 부활과 생명의 구세주로 우주만물 위에 높이 올리셨습니다. (필립보 6~11 참조)그리스도의 몸이요 오늘의 메시아인 교회 역시 고난을 겪지 않고서는 오늘의 인간 사회를 부활의 생명으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오로는『언제나 예수의 죽음을 체험하면서 예수의 생명이 우리의 몸에서 드러나게 하고 있다』고(Ⅰ꼬4ㆍ10)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땅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서 그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명을 지고 있는 우리들의 부활 증거의 길도 오직 하나뿐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바오로와 같이『십자가밖에 자랑할 것이 없다』(갈라디아 6ㆍ4)는 신념 속에 살면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몸소 체험하리 만큼 이 사회와 겨례를 구하는 십자가를 주저없이 지고 가는 것입니다.
특히 불우한 형제들, 우리 자신도 포함한 이 사회 전체인 불의와 부정으로 말미암아 고통 받는 모든 이를 위하여 그들의 아픔을 나눌 줄 알고, 그들을 위해 자신을 바칠 줄 알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복음에 돌아가 복음적 가난에 살고 사랑으로 봉사하는 교회가 되고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에 우리는 이 사회 속에 부활과 구원의 빛을 밝히는 교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증거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다시금 여러분 모두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와 빛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1976년 부활주일 서울대교구장 추기경 김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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