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정부는 많은 교우를 비밀리에 교수형으로 처치하였다. 그러나 연말이 박도함에 따라 어떻게 해서든지 연내에 박해를 끝내야 했으므로 더욱 초조해졌고 따라서 나머지 교우들의 재판 결과를 빨리 보고하도록 관계 관청에 시달하게 되었다.
12월 10일 전라도 감사로부터 보고가 있었다. 홍재영 오종례 등 4명을 참형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들의 순교는 이 무렵에 있어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교였고 이로써 전라도에 박해가 끝을 맺었다.
12월 11일 형조에서 소위 사학죄인을 조사한 일로 아래와 같은 보고가 있었다.
『박종원인즉 천당 지옥을 두고 틀림이 없다고 말하고 제사는 헛된 일이어서 패하었으며 일심으로 믿어 죽기를 맹세하고 뉘우치지 않는다.
여자 손소벽인즉 온 몸이 사학에 젖었고 온 집안이 이때 감화되었다.
여자 이인덕인즉 본성이 악해서 그만큼 더 심하게 미혹하였으며 양인에게 절을 하고 그들로부터 요법을 배워 인륜을 끊고 죽기를 원한다.
여자 권진이는 사술이 뼈에까지 베였었고 마귀를 빌미로 삼아 실로 여자 중의 괴물이다.
여자 이성례인즉 몰래 서양 사람과 결탁해서 나쁜 계명을 배웠고 죽은 서방(최방지거)을 천당에 간 것으로 자기하니 실로 교활하고 간악함이 지극할 뿐만 아니라 나이 어린 자식(최도마 신부)을 외국으로 보냄으로써 인정을 끊었다.
여자 李경어인즉 처음에는 가정에서 물들었고 나중에는 경향 각지에 출몰하면서 계명을받고 이름을 받았으며 한결같이 죽기를 자기하고 있다.
홍병주인즉 낙민이가 할아버지가 되고 자영이가 숙부이므로 그들에게서 도를 배운 만큼 미혹됨이 더욱 심하다.
이들은 모두 일각이라도 용서할 수가 없고 또한 이미 승복을 받았으므로 결안하는 초사를 받은 뒤에 품의하여 처리하겠다』고 하였다. 그 허락이 내렸다.
이틀 후에 다시 형조에서 아뢰는 말에 『박종원ㆍ손소벽ㆍ이인덕ㆍ권진이ㆍ이성예ㆍ이경이ㆍ홍병주 등을 관례를 따라 결안하였는데 이것은 시일을 기다리지 않고 참형을 한 것이므로 의정부에 보고하여 자세히 살피게 하기를 청한다』고 하였더니 허락이 내렸다.
12월 16일 형조에서 사학죄인 홍영주 등을 조사한 보고가 있었다.
『홍영주인즉 요서와 요술을 가정의 학문이라고 자칭하고 마귀를 모으는 본성이 추하고 또한 주재의 초상을 거짓으로 지어 냈으며 형벌을 감심하고 죽기로 맹세하며 뉘우치지 않는다.
이문우인즉 양인놈을 스승으로 섬기고 주재를 숭봉하며 제사를 폐하고 윤기를 없이 하며 한 번 죽기를 기약하고 있다.
여자 최영이인즉 뼈와 살에 사기가 스며들어 온 몸이 마귀가 되었으니 이와 같은 화외의 물건은 청인한 세상이 용납하기가 어렵다.
이상은 모두 이미 승복하였은즉 결안한 뒤에 품의하여 처리하겠다』하였더니 허락하였다.
12월 19일 형조에서 사학죄인 홍영주 등의 결안 사실을 아뢰었다.
보고하기를『죄인 홍영주 이문우 최영이 등은 사술에 고혹하여 죽기로 맹세하고 뉘우치지 아니 하니 예를 따라 결안하였는데 이것은 시일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의정부에 보고하여 자세히 살펴 시행하기를 청한다』고 하므로 대비의 윤허가 있었다.
12월 27일 형조에서 사학죄인 박종원 등을 정형한 사실을 보고해 왔다.
형조에서 아뢰는 말이『사학죄인 박종원 손소벽 이인덕 권진이 이성례 이경이 홍병주 등을 당일에 사장에서 참형에 처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튿날에는 사학죄인 홍영주 이문우 최영이 등을 또한 참형에 처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사형이 이틀에 나누어 집행된 것은 조선법에 홍병주와 영주 형제를 한 날에 집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2월 27일에는 7명이 그리고 다음날에는 3명이 모두 사장에서 처형되었다. 여기 사장은 당고개를 가리켜 한 말이다. 주교나 신부 또 아주 유력한 교우는 새남터에서 사형이 집행되었으나 그 밖의 경우에는 으레 서소문 밖에서 처형하였는데 왜 이들은 유달리 당고개에서 처형되었을까?
이에 관하여 권아가다의 순교 사실을 증언하는 마당에서 유발바라는 새해가 입박했기 때문에 만일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사형이 집행된다면 이 부근의 상인들이 대목장의 손해를 볼 것을 두려워하여 형조 판서에게 사형장을 옮겨 줄 것을 진정하가에 이르렀다는 것이고 그래서 판서도 그들의 청을 들어 형장을 당고개로 옮기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12월 27일과 28일 양일간에 걸쳐 당고개에서 참수 처형한 남녀 교우 10명 중 이성례(마리아)만은 상술한 형조의 마지막 보고서에 그의 신앙 고백이 뚜렷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복자의 대열에 끼지 못하였다. 그는 최방지거의 아내요 최도마 신부의 모친이다.
또한 상술한 전주의 4명의 순교자도 복자의 반열에 들지 못했다. 왜냐하면 기해박해 순교자 중 오직 서울의 순교자들만이 시복 청원 명단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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