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10월 10일 토요일.
억수 같이 퍼부은 비는 내가 일하던 모건축회사의 작업 현장을 웅덩이로 만들었는가 하면 곳곳에 작고 큰 흙더미를 이루어 여간 위험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곳에서도 작업은 계속되었다.
나는 미끌어졌고 콩크리트에 넘어져서 상처를 입었다. 그리하여 가까운 회사 지정병원에서 대강 치료를 받은 뒤 본병원으로 와서 X-RAY 촬영 등 여러 가지 검사 결과 요도 파열이란 진단이 나왔다. 수술은 밤 8시부터 시작되어 다음날 아침에야 의식을 찾았으나 조금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복부가 아팠다. 복부에는 인공 배뇨를 위한 튜브가 달려 있었다. 회사의 동료나 총무과장님은 밤을 새우다시피 위로를 해주며 수술 결과가 좋다는 담당의사의 말씀을 전해 주었다. 모든 일은 다 잘 되어갔다. 수술 후유증이나 별다른 이상 없이 1개월이 지났고 배뇨 튜브도 뗄 수 있었다. 나는 회사에 연락하여 퇴원 수속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그날 아침…
배뇨가 약간 시원치 않아 담당의사님에게 말하니 요도에 협착이 왔으니 내일 오전에 가벼운 수술을 하고 다음날 퇴원하라는 것이었다.
담당의사님도 대수롭지 않게 말하기에 나 역시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였다.
다음날 수술실에 내려가니 마취과에서는 실습생이 간호원과 농담을 하고 있었다. 수술대 위에 올라가니 실습생은 허리를 구부리고 조금 기다리라며 주사할 부분에 소독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척추선골에 거듭 두 대를 주사해도 마취가 안 되는 것이 아닌가. 그 굉장한 통증에 나는 주사를 중지해 달라고 애원하였지만 다시 한 대…요도 부분만 마취한다는 것이 하체가 모두 마취된 것이다. 나는 담당의사님에게 왜 부분마취를 한다는 것이 하반신 전체가 마취되느냐고 물었다.
두세 시간만 병실에 누워 있으면 마취가 풀린다는 의사님 말대로 기다려 보았으나 하반신의 통증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소리를 질러야했다.
허리가 아프고 호흡이 곤란한 채 계속 마취는 풀리지 않으니 어찌된 영문인가. 신경외과 진찰 결과는 마취과정에서 신경 자체의 변화를 가져왔다면서 3개월 안에 회복이 안 되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2년이 지나도 하체의 기능은 더 이상 회복이 안 되고 합병증만 발생하는 것이었다. 담당의는 최선을 다하면 기적이라는 것이 있으니 잘 참아 보라며 병상생활이 지루하면 앉아서 하는 기술을 배워 보라는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청천벽력이었다.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했던 환자가 무성의한 마취주사로 불구가 되어야 한다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사람이 신이 아닌 이상 실수는 저지를 수 있는 일이니 책임을 따져 논한다는 것이 얼마나 각박한 일인가.
나는 모든 문제를 선의로 받아들여 될 수 있는 대로 안정을 기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을까…사회는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선하지는 않았고 병원 측에서는 차차 보상과 치료를 외면하는 것이었다.
인간이 사회 속에 사는 이상 질서를 위해서는 밝혀야 할 법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가…
그러나 이제는 때 늦은 후회일 뿐이다. 주위에서는 불구 폐인이 되어 어찌하여 가만히 있는가 하루 속히 법의 보호를 받으라지만 만일 패소할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 측에서는 내게 강력한 조치로 강제퇴원을 명할 것이고 하반신이 마비된 채 어디로 갈 것인가…그러나 나는 민사지방법원에 보상청구소송을 제기했고 1년간이나 계속된 재판 결과는 패소였다.
『마취과정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라는 신문 보도의 내용은 믿을 수 없고 의사의 과오도 찾아보기 어려우므로 본건은 환자의 특이한 체질이 아닌가 추상하게 되어 본건을 기각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약자임을 통감하며 마지막으로 관계기관에 진정을 하여 수 주일이 지나 회신을 받았다.
『귀하의 가련한 사정을 동정하는 바입니다. 현지를 답사한 바 귀하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에서 완쾌될 때까지 귀하를 무료 치료하겠다고 하니 안심하고 열심히 치료를 받아 하루 속히 완쾌하십시오』나는 이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다. 인간은 흙에서 왔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지만 무언가 사명이 주어져 세상에 내보내진다고 믿는다. 나는 12년을 병상에 누워 가난하고 외로우며 고통 중에 있는 환우들을 많이 사귀어 왔다. 우리는 서로 위로하며 힘을 얻었고 퇴원한 사람들은 자주 병상을 찾아오기도 했다. 어거적거리며 목발을 짚은 하체마비자들, 무섭게 일그러진 화상 입은 얼굴 노인 소년 그리고 그 가난하고 따뜻한 여인들…
모르는 사이에 나는 단순히 남의 동정이나 받는 만년환자가 아니라 그들에게 용기를 주는 존재가 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이 바로 이것이라면 결코 불평할 일이 아니라 더욱 충실히 그 일을 수행해야 한다.
참고 웃는 낯으로 나보다 더 고통 받는 환우를 위로하고, 고통을 못 참는 환우를위해서는 나의 의지 나의 처지 나의 결심을 보여 줘야 할 것이다.
병원 당국을 위해서도 나란 사람은 무조건 귀찮은 존재 빨리 완쾌되어 나가 버렸으면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마취주사 하나 무성의하게 놓은 것이 한 사람의 삶을 이렇게 만들었다면 주사 바늘 꽂는 데도 극소의 약가루를 취급하는 데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사나 간호원들은 절감하고 있으리라. 이 또한 내게 주어진 하나의 사명이 아닐까…
나는 오늘도 열심히 보행 연습을 한다. 날개 꺾인 새가 열심히 날으는 연습을 하듯, 다시 사회에 나가 일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보행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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