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추는 모양이었다.
확실치는 않으나 덩실덩실 춤추는 모양이 형화의 움츠려진 동공 속으로 비쳐 들어온다.
꽃분홍 한복의 여인 하나가 덩실덩실 팔을 저으며 춤을 출 때마다 초록빛 한강물 위에는 마치 한 송이 꽃이 피고、또 피고、또 피는 듯 보인다.
거의 쓰러질 듯 뱃머리 가까이에 서서 춤추는 이 여인은 신명이나 들린 듯 덩실거리는 모습을 그칠 줄 모른다.
사공은 천천히 노를 젓고、두 갈래로 갈라지는 물결의 여파는 여전히 유유히 펴져나간다.
강물은 어디로 그렇게 흐르나.
유유히 흘러간 강물은 바다로 가면 또 어디로 가나.
바다는 바다를 맴돌고、바다는 바다를 갈 뿐인가.
이 너른 강바닥은 어디서 온 것이며 어디서 마치나.
사공은 침묵처럼 노만 젓는다.
그리고 분홍꽃은 자꾸 피고 진다.
형화는 순간 자기 목구멍이 몹시 칼칼해져온다.
아차 아침엔 물도 한 모금 못 마시고 허둥대며 뛰어나왔군 그렇게 생각했으나 목은 칼칼한데다가 씁씁하고 불쾌하다.
형화는 자기가 딛고 서 있은 모든 것이 크게 흔들리어 진동하는 것을 신발 바닥을 통해 느낀다.
(터졌구나!)
형화는 본능적으로 난간을 힘껏 움켜쥐었다.
가까운 하늘 어디에선가 시커먼 연기가 퍼져 올라갈 것만 같은 직감에 목을 놀리며 둘러보지만 별다른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고요하기만하다.
하늘엔 다만 몇 조각의 흰 구름이 평화로울 뿐이고 해는 어느새 좀 더 올라서 있는 것이다.
형화는 하얀 벌레에 관해 꿈을 꾸곤하는 것은 매우 자주 있는 일이다.
하늘을 기어다니는 꿈속의 하얀 벌레는 마치 배추벌레처럼 동그랗고 길다랗게 살이 올라 있는데、그것은 분명 금속성이었다.
엄청나게 크게 하얀 총알이었다.
하얀 벌레가 하늘에 나타나면 형화는 배추벌레를 본 듯이 소스라치는 것이었다. 우연히도 흰 벌레는 형화가 소풍가는 날마다 나르는 것이다.
숲 속 나무 그늘에서 자리를 깔고 앉아 즐겁게 놀 양이면 하늘엔 꼭 소리없이 흰 벌레가 날았다.
그것은 수풀의 잎사귀 사이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러면 형화는 펼쳐놓은 도시락도 맛있는 과일들도 모두 내팽개친 채 숲속을 달려 어디론가로 질겁하며 달려가는 것이었다.
모두들 소풍의 평화로움을 잃고 혼비백산하여 달려가는 것이다.
끝에는 꼭 낭떠러지가 있었다.
그러면 모두 아연하게 질린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면 하늘에서는 흰 벌레가 어느새 검은 적수의 벌레를 만나 싸움을 벌이려는 것이었다.
싸움의 신호는 깃발이었다.
흰 벌레가 자기의 몸통에 희고 빨간 무늬、그 속에 여러 개의 별이 그려진 깃발을 휘감는 것이었다.
그것은 성조기였다.
그러면 검은 벌레는 붉은 깃발을 감기 시작하고、그래서 싸움이 터지면 아무 것도 없을 만큼 큰 진동이 있었다.
형화가 놀라서 낭떠리지에서 떨어지다가 몸부림을 치다보면 꿈을 깨곤 했다.
이불을 걷어차고 땀을 흘리는 게 보통이었다.
하늘엔 흰 벌레도 검은 벌레도 없었다. 그래도 형화는 엉겁결에 달린다.
물 속에 쳐박혀서는 안 된다는 집년으로 핸드백을 내두르며 달리는 것이다.
강물 속으로 떨어져 숱한 사내들과 엉켜서 영원히 잠들 수 없다는 생각도 잊었는데 더 열심히 달린다.
형화가 달리기를 멈춘 것은 얼마가지 않아서였다.
급작히 뛰다가 드센 사람들에게 밀쳐져 인도를 벗어나 차도에로 넘어진 것이다.
형화는 쓰러질 듯 승용차의 뒷부분에 몸을 던졌다.
별안간 온몸이 뜨뜻해져오면서 큰 진동을 느낀다. 차들이 발동을 걸기 시작하고 있었다. 부릉、부릉.
형화가 비스듬히 기댄 차의 배기통에서 뜨겁고 불쾌한 가스가 새어나와 형화의 다리에 와 닿았다.
형화는 이제 목이 또 한 번 칼칼해져오는 까닭을 알았다.
달려가던 사람들이 형화를 보고는 킬킬대고 웃는다.
형화는 자세를 바로잡아 몸을 일으켜 세웠다.
꽃은?
연분홍 꽃을 다시 보아야 했다.
몸을 타고 다시 난간에 다가가 내다보았을 때、사공과 여인네들의 모습은 중지도에 가리웠는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형화는 허한 마음으로 강물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한 번 채 물에 젖어들지 않은 종이 한 장을 발견한다.
그리고 뒤따라 흘러내려오는 길게 늘어진 하얀 천의 모습을 본다.
도대체 그것이 어디서 솟아나온 것인지를 알지 못하겠는 형화는 흰 종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종이는 다리 밑을 흘러 통과한다.
형화는 그것을 보기 위해 난간에서 틈을 한없이 굽혀 내려간다.
몸은 벌써 구십도를 넘게 굽어있을 무렵에서이다.
-헤이 형화 조. 아침부터 투신자살이야?
형화는 명랑한 목소리와 함께 두툼한 손이 자신의 오른쪽 어깨에 와 닿는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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