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붐이 일던 56~63년 사이. 일손이 부족하여 동분서주하였다. 새 공소를 짓고 나면 달포가 지나기 전에 또 다른 곳에 새 성전을 지어야 하고 또 다른 집회소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러나 아무리 일이 겹쳐도 피곤하지 않았다. 하루 4시간 수면에 체중이 10㎏나 줄었지만 번창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에 몸이 열 개가 아닌 것이 야속했다.
열 평 남짓한 천막집을 짓고 포탄 껍질을 구해다가 종으로 사용했다. 딩-딩-딩-. 둔탁한 음향이 저녁 연기 서린 골짜기에 퍼질 때면 보리밥 숭늉맛 같은 구수함이 있어 듣기가 좋다.
천막 안에 빽빽이 들어앉은 정기 어린 눈, 눈동자들.『회장님, 일은 하나이신 천주를 흠숭하고… 하였으니 천주님 연세는 일흔하나(71세) 되시는 백발 홍안이시지요?』하면 다른 사람이『회장님, 오는 사람을 죽이지 말고…하였으니 가는 사람은 죽여도 되지요?』이런 농이 나올 때면 장내는 폭소가 터진다.
어쩌다 미사를 드리게 되면「도미누스 보비스꿈」「엘꿈스삐리 뚜뚜오」가 무슨 뜻인지 몰라도 좋다. 소박한 소청을 칠성님께 빌던 한민족의 후예들은 그저 눈과 마음으로 치성껏 빌었다. 그러나 논리적 사고가 없었어도 그곳엔 냉담자가 없었고 사랑과 우애가 넘쳐흘렀다. 세월이 흐르고 뉼벨또가 그렇게도 보고 죽기를 원하던 새 성당이 비록 남의 덕으로 세워지고 청아한 종소리가 울려퍼져도 이제는 마음들이 얼어가고 있다.
저녁기도와 논메기 타령조의 성가가 끝나면 교리와 얘기의 꽃이 핀다. 새벽 2시가 넘었는데도 꼬마 마리노 녀석의 눈동자는 초롱보다 더 밝다. 일어서기 싫어하는 꼬마들을 앞세우고 모두가 돌아가고 나면 방바닥에 등을 대고 들창에 넘친 달빛을 본다.
밤의 쾌적함을 음미하노라면 어느 새 사르르 눈이 감긴다. 아침 밥상 위에서 산초 기름에 튀긴 메뚜기를 맛보고 들깨잎 반찬을 들면 시골 아낙네의 정성이 씹힌다.『그리스도 안에 모두 하나가 됩시다』그런 외침 따위를 그들은 들어보지도 못했지만 이미 오손도손 하나이었고 겸손과 단순함과 사랑의 덕을 노력함 없이도 저절로 몸에 익히고 있었다.
흘러간 순간들을 돌이킬 때면 황소처럼 울고픈 고독이었다. 포탄 껍질 종소리도 뻐꾹새 울음도 이제는 그리운 메아리일 뿐! 대포 한 잔 들고 앉아 고속으로 달리는 가장 행렬을 구경한다. 내일이나 낳게 될지도 모를 진실이란 녀석의 새 이름을 궁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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