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새해가 밝자 월남전쟁의 전운은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월맹 정규군은 캄보디아 국경 연변을 일제히 함락하여 월남 전사상 최대의 사태를 보였건만 미군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뒤미처 중부고원이 3일 만에 무너지고 이어서「플레이크」「콘쯤」으로부터 철퇴「퀸리」가 함락되었다.
월맹 대부대는 중부 해안을 파죽지세로 남하했다. 이륙하는 비행기의 다리에 매달리는 남민들의 비참한 탈출 상황도「사이공」에 널리 퍼졌다.
그러나 군과 정계는 서로 헐뜯기만 하고 있었다.
『티우의 계획은 완전 미스요 다낭에 대한 방위 계획이 영 엉망이 되잖았오! 중부에서 왜 후퇴를 하는 거요!』
『요는 부패야 군대가 부패했기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오』
그날「사이공」거리에는 아침부터 열대서 보기 드문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싸우자고 호령하던 지도자들은 모두 도망쳤다.
나라를 사랑한다면 현위치를 사수하라고 라디오 방송을 한 참모총장 민 록은 연설이 끝나자 그 길로 미군 헬리콥터 발착 지점에 직행 국외로 도망쳤다.
미국 대사관 직원과「사이공」정권 요인들을 탈출시킬 헬리콥터 공수작전은 이미 끝난 지 오래였다.
시내에는 우왕좌왕하는 난민들이 가득 찼으며 월맹 정규군 정예부대는 사방 팔방으로 수도권에 돌입하고 있었다.
월남 공화국이 무너지는 소리가 라디오를 통해 침울하게 흩어졌다.『···베트남인의 피를 더이상 헛되이 흘리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전부를 중지하고 정부의 모든 실권을 이양한다.』
결국 우리는 조국을 잃는 것인가···붉게 물든「사이공」을 탈출하며 젊은이는 울부짖었다.『사정이야 어떻든 패자들이 겪는 감정은 비참과 모멸 체념과 불안 그리고 끝없는 부끄러움이다. 항복의 깃발은 어째서 텅 빈 백기라야 하는가! 나는 백기의 공백에 사랑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베트콩의 힘은 증오에서 생겨난다. 숲 속에서는 인간을 괴롭히고 피를 빠는 복수가 있다. 그들은 미워하라! 미워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사랑이란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다. 높은 것을 헐어 늪을 메우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지상의 것은 높여가는 소동이다. 분하다! 나는 후회라는 말을 백기위에 적으리라. 어머니를 잃고 효도를 배우는 자식들! 이것이 월남인의 도덕심이다. 그러나 후회라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잘 있거라 친숙한 것들이여! 반데이 루억공원의 커피 냄새여! 후예의 민망왕능 성각이여! 「사이공」거리의 가로수와 인력거의 바퀴 소리여 잘 있거라 이제 너희들의 운명을 단죄할 사람들이 백기를 거두러 이곳에 온다···
5월 2일 밤「사이공」을 탈출한 우리는 상륙용 주정에 몸을 싣고 바다로 나왔다. 낙엽처럼 망망대해를 표류하기 나흘··· 새벽 미명 속에 화물선 같은 검은 물체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국의 박명석 선장이 이끄는 화물선 쌍용호였다. 견디다 못한 우리는 구명 자켓을 입고 바다에 뛰어들어 결사적으로 헤엄쳐 갔다. 다른 배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건만 박 선장은 우리 배를 연결시켜 미군 구조 본부에 인계하겠으니 안심하란다. 한국 정부로부터 아직 아무런 지시도 못 받은 채 양심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박 선장···태국으로 가는 길에 미군 함정을 만나 구조를 요청했으나 필립핀으로 가 보라는 말뿐 반응이 없다. 우리들은 20분 동안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다. 나라 잃은 설움 닥쳐올 운명에 대한 불안 그리고 한국 친구들에게 대한 감사함이 울음을 북받치게 한 것이다. 태국「방콕에 정박했으나 태국 정부는 우리가 기대하던 정부는 아니었다. 쌍용호는 바다의 미아처럼 갈 바를 몰랐다.『동요하지 마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들을 공산 치하의 월남에 보내지는 않을 것이오. 한국민은 6.25를 겪었습니다. 전 세계 어느 민족보다 우리 한국민은 공산주의자의 악랄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들을 그들에게 보내느니 차라리 옛날 전설의 유령처럼 영원히 바다를 헤매리다.』그의 돌 같은 신념이 그의 조국 정부를 움직였는가. 아니면 그런 조국이기에 아니면 그와 같은 신념을 가지게 되는가···드디어 한국은 우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 내렸다. 난민들은 국가를 합창하고 환호성을 울렸다.
우리들이 부산 피난민 수용소에 수용되었던 며칠 동안은 우리가 겪었던 너무나 비참한 광경의 환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함께 머물렀던 동포들은 미국 프랑스 등 자유 우방을 찾아 흩어져 갔다.
그들은 나라를 등졌으나 마음이야 어찌 조국을 떠나겠는가.
영원한 사별을 하기 전에 사람들은 무엇인가 한마디 남기고자 한다. 이제「사이공」의 운명은 끝났다. 우리는 30년 동안 자유에 대한 귀중한 사명을 위해 공산주의와 싸웠고 막대한 희생을 바쳤다.
자유 우방의 모든 원조는 힘없고 작은 나라를 돕는다는 높은 뜻이 있었다.
즉 자유란 인류 전체의 표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유 우방은 우리를 버렸고 조국의 지도자들마저 떠나버렸다. 자유 세계에 보내는 유서에서 우리는 아직도 자유를 외치며 오직 전체주의적인 공산주의를 고발한다. 이미 죽은 사람의 유언과 지금 죽어가고 있는 사람의 유언을 인류는 들어줄 것인가. 끝까지 우리의 유언을 저버릴 것인가. 미구에 우리의 비극이 당신의 운명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이 유서를 쓴다. 당신들은 우리를 저버렸지만 우리는 자유를 믿는 당신들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불타서 재가 되어버린 우리의 비극으로 우리는 당신들에게 깊은 충고를 남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로 월남이라는 한 나라의 인간들이 오늘의 역사와 지도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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