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자의 거룩한 소명을 싸고 도는 엄숙한 신비는 언제나 인간의 심정을 끄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직업적인 평범한 직책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든지 경험적으로 보든지 이것은 독자적인 위치를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훌륭한 직업들을 멸시하거나 복음의 사자만이 하느님의 총애를 독점한다고 주장한다거나 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죄 많은 인간으로서 전능자의 사자가 된다는 것 그리스도의 심정의 해석자가 된다는 것, 이런 직책은 너무나 고귀하고 엄위한 바가 있기 때문에 인간 정신은 성령의 인도 아래 겸비하게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뿐이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일을 하시기 위하여 세대마다 사람들을 불러 그 위에 손을 얹으신다. 그는 호렙 언덕의 목자 모세를 불꽃 속에서 부르시어 방백(方伯)과 왕들 앞에 나서서 하느님의 백성을 해방시키라 명하셨다.『나 같은 것이 어찌 바로 앞에 갈 수 있겠습니까? 』하고 모세는 대답하였다.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기도였기 때문이다.
온 땅에 가득 찬 여호와의 영광의 진상을 본 이사야는『나는 죄인이외다』하고 부르짖었다. 평범한 무명 목양자 아모쓰에게 여호와께서 그의 비밀을 보이시매 그는 명령을 따랐었다.『너는 가서 내 백성에게 예언하라』그리하여 이엄 위한 명령의 권위 아래 이 무명의 한 야인(野人)은 이스라엘의 위선과 수치를 추상 같이 견책하였다. 이 사람들은 제 뜻대로 간 사람들이 아니라 보냄을 받아서 간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 역사 안에 전개되는 하느님의 목적을 이루는 일꾼으로 일한 것이다.
또 한분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을 보기로 하자. 예수의 사업과 사신을 동정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해명해줄 인물이 필요했다. 그는 갈릴리에서의 날들과 유다에서의 비극의 날들에서 그 아름다움과 그 깊은 속량의 뜻을 생생하게 감독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시대의 이 사람이어야 하며 베틀레헴과 갈릴리를 세기의 중심으로 세우기 위해서는 충분히 떨어져 있는 먼 지방 사람이기도 하여야 할 것이었다. 이 중추적인 직책을 서슴찮고 맡을 수 있는 이는 아직 하나도 없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달소의 사울을 붙잡으셨다. 사울은 하늘로부터 부름받은 자였다. 그는『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느님의 영원하신 목적을 따라 하느님의 은혜로 사신이 된 사람』이었다.
이런 것은 과거의 극적인 사건이었고 지금의 우리에게는 벌써 기대될 수도 없는 특례들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너무나 정상적인 생활에는 하느님이 구태여 간섭하실 여지도 없지 않을까? 우리의 심정에는 그의 소리가 우리의 소리가 울려오지 않으며 우리의 영혼에는 그의 손이 움직이지않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한 것이 아니라 』하신 말씀은 지금도 틀림없이 그러하다는 것을!
그의 팔이 짧아진 것도 아니며 그의 음성이 잠잠해진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의 부름 받은 직책이 아무리 높고 거룩한 성질의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를 세상 유혹에서 온전히 방어해 주는 것은 아니다.
사제직도 다른 직책에서와 마찬가지로 허다한 방해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의 생활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하느님의 사람」은 수다한 회중의 요구와 기대의 와중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때로는 그로 하여금 혼란과 미혹에 빠지게 된다. 그는 매주일마다 산뜻하고도 꾸준한 새 설교를 해야 한다.
그는 그렇게 광휘찬란하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명쾌한 인물이 되어 주어야 한다.
그는「사람들 중의 사람」참으로 사람다운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메마르고 가난한 심령들에게 친절한 조언자(助言者)가 되어야 한다. 그는 어린이들의 목자 지방 행사에 있어서 종교적인 지도자, 그리고 명철한 조직력으로 신자 각자에게 할 일을 제공하여 교회 행정을 물 샐 틈 없이 운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는 성전에는 불 붙여 주며 재정 예산에는 수지 맞추며 교우들을 위로하며 죄인들도 노여웁게 말아야 한다. 거기다가 다시 독서와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 직책이 어렵다는 데에 우리의 영광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너무 큰 직책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전 소유 전 존재를 걸고 들어야 하며 동시에 언제나 좀 더 잘 되려고 힘써야 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교역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의 목표를 향하여 끊임없이 올라가는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어야 하며 거기에는 멈추거나 돌아설 지점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별다른 인간은 아니지만 하느님의 은혜로「되어가는」꿈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우리를 강요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이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포기해 버렸거나 또는 제단의 계단에 걸쳐 넘어졌을 것이다. 이 제단의 계단이라는 것은「우리의 믿음을 주장하시며 또한 온전케 하시는」그리스도와 온전한 사귐에 들어가기 위하여 자기를 탈각하고 순례의 걸음을 걸어 올라가는 계단인 것이다.
이 치열한 전장에 출정한 자 누구를 막론하고 게으름뱅이의 칼을 물려가지거나 비겁자의 퇴물림인 겉옷을 받아 입을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나는 사제의 자격을 논함에 있어서 다 알려져 있는 특징은 말하고자 아니한다.
단 나는 여기서 사제는 선한 사람이어야 한다.
착실한 이여야 한다. 숙련된 조직력을 가져야 한다. 지혜로운 심리학자라야 한다 등등의 요구를 거론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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