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가 전하여질 때 국경과 그 민족에 따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다른 법이고 그 민족의 기존 정신문화의 형성이 복잡할수록 순수 그리스도교 이념이 변형되기 쉬운 법일 것이다. 이 장(章)에서 그런 큰 문제를 다룰 능력도 시간도 없지만 농촌사목의 한 부분을 맡고 다니다 보니 가끔 웃지 못할 사건들이 생긴다.
특히 서민의 정신 구조 안에 뿌리 깊게 깔려 있는 샤마니즘(Shamanism)적인 요소는 거의 난공불락의 성(城)과 같은 것이어서 영세 후에도 완전히 버려지지는 않는다.
어느 공소 70세대 3백 명의 신자 중 1백50명 성인(成人)들에게 입교 동기를 물었더니 9할 이상이 그런 요소의 직접 또는 간접 영향 때문이었다.
13년 전-. 사무실에 앉았는데 노-크도 없이 황급히 들어선 50대 중년 남자-『회장님, 지금 우리 마누라가 마귀에 접해 있으니 가서 좀 떼어 주십시요』인사도 경위 설명도 제쳐 놓고 속히 가자고 서두른다. 성수(聖水)와 기도서를 찾아 들고 여회장과 함께 찾아간 집-. 논 가운데 처마가 나즈막하게 내려 덮인 집에는 마루도 없고 도배도 하지 못한 초가 삼간. 문이라곤 단 하나의 출입문과 시멘트 포대 종이로 발리워진 봉창 하나. 그것은 환기창이라기보다 일종의 조명창이기도 하다.
투박하게 밀려들어온 빛 속에 깊숙하게 보이는 방 속에는 가구 하나 없고 때 묻은 무명옷을 걸친 환자가 침침하게 보인다. 습한 공기를 가르고『으호호…히히히…』귀신 음성 같은 괴성이 전신을 오싹하게 한다. 원래 귀신 따위를 믿지 않던 나지만 막상 그런 분위기에 접하니 긴장된다.
환자와 방 안에 성수를 뿌린 다음 천신도문, 오상경 그리고 성인열품도문을 차례로 부지런히 통경해 내려갔다. 그러자 그 기분 나쁜 괴성이 그쳤다. 침묵 속에 경 읽기에만 몰두하여 잠시 다른 것을 잊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툭』소리를 내며 내가 읽고 있던 기도서가 방바닥에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눈을 뜨니 앗! 쪽머리를 산발하고 쾡하니 촛점 잃은 눈을 한 소복한 여인이 열 손가락을 할퀼 듯이 세워가지고는 상하로 허우적거린다. 그런 일에 경험 많은 여회장이 어느새 잽싸게 그 머리채를 휘말아 채어가지고 뒤로 끌어내어 방바닥에 쓸어뜨렸다.
『으-호호 히-히히』다시 성수를 뿌리고 분도패와 십자몸 고상을 환자 목에 달고 나자 잠잠해졌다.
다시 경을 시작하자 내 목소리는 긴장으로 떨렸다.『회장님, 제가 회장님을 모셔 왔다 하여 제게 덤비는 것입니다. 잠시 후에는 잘 가라는 말을 하면서 문 쪽으로 쓸어질 것입니다』옆에 있던 주인 남자가 가만히 귓속말로 일러 주었다. 당황하는 내 모습을 보여 부끄러웠고 환자를 살피면서 경을 보자니 기도가 엉망이었다.
과연 얼마 후 환자는 문을 차고 나가서는 논두렁에 누런 물을 한참동안 토해냈다.
잠시 후 머리와 옷 매무새를 바로하고 들어와서는『이렇게 오셔서 수고해 주시니 고맙습니다』하면서 정중히 인사를 한다.
그런데 그 말의 음색이 그렇게도 바뀔 수 있을까! 괴성을 발할 때와는 너무도 그 음색이 변해 있었다.
정상으로 돌아오자 내 의문 많은 본성이 작용하였다.『누가 나타나 보이십니까? 또 그분이 어떤 짓을 하나요?』『예, 시숙이 나타나 보이는데 한 손에 시퍼런 칼을 움켜쥐고 자기를 신(神)으로 모셔 달라고 합니다. 겁에 질려 사방으로 쫓기다가 뒤로 넘어지면 배 위에 걸터앉아 목을 조으며 가슴을 칼로 휘졌습니다. 그럴 때면 마치 빈 솥을 칼로 휘젓는 소리가 나고 고통으로 의식이 멀어진답니다. 한참 지나 정신이 차려질 때면 애이! 오늘도 안 되겠군 하시며 훌훌 떠나시지요』『그래요? 그러면 시숙께서는 언제 돌아가셨나요. 그때 시숙을 보셨습니까?』그 질문에 잠시 망설이다가『제가 열여섯 살에 시집 온 다음해지요. 그때 모 심기가 한창이어서 전 가족이 논에 나가고 저는 점심 준비를 마쳐 그걸 가지고 나가려다가 소 생각이 나서 소마구에 갔었지요. 그런데 그곳에 가서 보니 소마구 대들보에 시숙이 목이 매여 축 늘어져 있질 않겠습니까? 그 후 정신이 들어 깨어보니 안방이었어요』
그렇다! 저 영양실조된 육체 위에 그 끔찍한 기억이 지금 하나의 실존으로 화신되어 이 연약한 여인을 들볶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더라도「알고서도 속아주는 것은 아량이지만 모르고서 속는 것은 어리석음」이란 처세관을 가진 이 제2의 도마에게 그것은 완전한 답이 아닌 하나의 추론에 불과하다. 잡신 그리고 마귀, 그것은 나에게 있어 아직도 하나의 미스테리일 뿐이다. (계속)
◇일선 전교사들이 많은 투고를 바랍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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