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 속에 입은 제의(祭衣)로 복음 전파의 반 세기를 살아오면서 한국 교회와 희비를 함께 한 서울대교구 구천우 신부(요셉 79)가 23일 사제서품 50주년 금경축을 맞는다.
본당 신부가『자네 신학교 갈 생각 없나』고 던진 한마디에 자신의 가슴 속에 움 트고 있는 성소(聖召)를 느꼈던 17세 소년이 그「부르심」의 뜻대로 29세에 사제의 길에 올랐고 그로부터 50년.
구 신부는『힘껏 일했다는 생각을 하면 감사할 뿐 아무런 후회도 미련도 없다』고 담담히 성직 50년을 회고한다.
황해도 장연 출신으로 1926년 5월 23일 서품된 후 충남 합덕본당 보좌신부로 오늘의 여정을 시작한 구 신부는 황해도 해주 곡산 신천 등지에서 20년간 사목하며 황해도 지방 전교에 남다른 공헌을 남겼고 그 후 서울 명동 성가기숙사 사감(49년) 용산본당 주임(50년) 경기도 하우현 주임(53년) 안양 주임(54) 서울 대신학교 영신 지도(63년)를 거쳐 작년 1월 78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파란만장의 일생인 것 같습니다. 나라의 역사도 그렇고 내가 살아온 교회도 많은 수난을 겪었지요』
구 신부는 철학을 배우던 1919년 3ㆍ1 독립만세사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날 저녁 취침 후에는 큰 기침도 삼가야 할 만큼 엄격한 신학교 규칙을 깨고 모두가 기숙사 창문을 열어젖히고 밖을 향해「대한독립만세」를 목이 쉬도록 불렀던 것.
이 놀랄 만한 규칙 위반이 초래할 벌칙을 각오한 학생들은 이튿날 아침 자진해서 짐을 꾸리고 귀향 준비를 했지만「어쩐 일인지」한 차례 훈계로 끝나고 말았다.
성질이 강직하고 급하기로 이름 났던 구 신부가 신부로서 겪어야 했던 숱한 일들도 지금은 새롭다.
보좌 시절 트집에 가까운 주임신부의 꾸중에 반론을 펴고 떠나던 일. 황해도 지방에서 부자 신자들의 반발을 받아가며 교무금 등급제를 심던 일, 신부말 안 듣는 공소에 벌칙으로 성사 막던 일,「높은 양반」의 일관성 없는 결정에 항의하던 일 등 성직 50년이「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결국 신부 생활은 자기 양심 성찰, 게을리 않고 천주 대전에 책임을 완수하겠다는 각오 없이는 안 됩니다. 기구하는 자세가 중요한 건 말할 것도 없구요』
6명의 동창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이며 서울교구 신부 중 세 번째 고령자인 구 신부는 은퇴 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199의 3번지 은퇴신부 사택에서 생질녀인 금보옥 여사 부부와 함께 살고 있다.
유일한 낙은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오는 윤향중 신부(은퇴)와 바둑을 두는 일. 일 년에 몇 번 찾아주는 안양본당 신자들 외는 별로 오는 이도 없다.
『외로운 것, 그거야 말해서 뭘 해』. 이 노사제를 위해 서울교구는 24일 오후 2시 서울 대신학교에서 축하식을 갖기로 했고 가족들은 따로 23일 오후 1시 서울 도봉구 미아동 749의 4 큰 생질녀 금순옥 여사(한국일보 기사심의실장 김자환씨 부인) 댁에서 조촐한 축하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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