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7월, 스페인 내란당시 혁명의 불길은 스페인 전국을 혼란 의 와중에 몰아넣고 있었다.
스페인 남부와 서부는 이미 공산당의 수중에 점령됐고 마드리드 남쪽 편에 있는 토래도시(市) 역시 함락됐다.
이제 오직 알카자르 지방만 남아 버티고 있었다.
최후의 보루는 육군사관학교와 공무원학교였다.
이 조그만 요새에는 겨우 75명의 밀집 방어병력만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동료병사들이 휴가 중에 있을 동안 귀대해온 방어병력이었다.
그 밖에 요새 안에는 7백 50명의 가족들을 거느린 가장(家長) 시민군(軍)등이 섞여있었고 8백 명의 부녀자와 아이들뿐으로 총 1천 1백 명의 남자들이 방어병력의 전부였다.
그들은 엄청난 병력의 공산당 포위망 속에 자그만 섬처럼 요새를 구축했다. 그들 요새는 교회만큼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공산당 부대의 사령관은 방위군의 모스카느도 대령에게『우리에게 항복할 뜻이 없느냐』고 물었고 대답은 항상『절대 항복 않는다.』였다.
마드리드 라디오 방송은 7월말『1만 명의 병력이 알카자르를 점령하기 위해 포진하고 있다』고 방송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포위군의 병력만 믿었지 1천 1백 명의 포위된 저항군들이 성모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을 않았다.
모스카느도 사령관과 젊은 수습사관들은 자칭 마리아 신심회(信心會)회원임을 자처하고 있었다.
18세에서 20세 사이의 이들 젊은이들은 방어 상태에 있는 알카자르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카타케나에서 온 주교는 로마 교황청에『본은 이들 젊은 사관(士官) 병사들에 용기와 영웅적인 용맹성에 대한 크나큰 시험이 주어져 있음과 또한 그들이 우리들의 성모님의 기사로서「사탄」을 정복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고 보고했다.
모든 젊은 방어 군은 오직 성모님에게 기댔다. 이때 병원 안에서 한 병사가 낡은 성모상을 발견했다.
한 장교가 성모상 앞에서 묵주기도를 바치자 다른 방어군 병사들도 따라서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를 바쳤다.
『우리를 도우소서, 성모 마리아여, 우리를 도우소서……』
하루에 두 번씩 방어군 병사들은 성모상 앞에 모여 기도를 했다.
1천1백 명 대(對) 1만 명의 병력, 그것도 포위상태에 있는 방어 군으로서는 기도 이외에는 기댈 곳이 없었다.
그러나 성모님은 그들에게 힘겨운 시련을 주었다.
포위군의 가공할 만한 포격에 견디지 못한 1천 9백여 명의 방어 군과 주민들은 지하실로 대피해야 했다.
신선한 공기도 빛도 없고 소식마저 완전 두절된 채 기도할 기력마저 잃은 채 지옥 같은 71일간의 지하생활이 시작됐다.
32일째 되던 날 비행기로부터 공화군을 이끄는 프랑코로부터 곧 해방시켜 주겠다는 서약통지가 왔다.
모두들 감격에 떨며 기도들 다시 시작했다.
8월 들면서 전투는 더욱 치열해졌고 사람들은 이제 항복해야 되는 구나고 생각했다.
식수도 떨어졌다. 그럴수록 기도는 더욱 열심히 바쳐졌다.
그 결과 누군가가 지하 건물 안에서 4만 리터의 물이든 저수통을 발견해냈다.
의사도 단 세 명뿐이었고 그나마 외과의사는 한 명도 없었으나 촛불아래 소독약도 마취제도 떨어진 상태에서 환자와 부상자들을 수술했지만 한 사람의 실패도 내지 않는 기적을 보였다.
어린애들도 단지 약간의 붉은 고기만으로도 만족했다.
오직 80명의 목숨만이 그 지옥 같은 생활 속에서 하늘나라로 떠나갔을 뿐이었다.
사령관이하 방어 군들은 성모님의 기도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와중에 모스카르도 사령관의 아들이 공산군의 수중에 잡혀갔다.
아버지인 사형관이 알카자르 방어를 포기하면 살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총살하겠다고 위협했다.
17세의 사령관 아들은 그들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돌아가지 않겠다.』고 저항했다.
결국 그는 총살을 당했다.
그가 마지막 남긴 말은 『하느님 아버지, 하늘의 임금이시여』였다.
드디어 포위군은요새 밑으로 2개의 터널을 뚫어 폭파시키기로 했다.
9월18일 알카자르는 공중에 폭발할 위기에 다다랐다.
위기를 안 방위군은 오직 하나의 기적만이 그들을 살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는 전원이 묵주기도를 올렸다.
드디어 우르릉하는 폭발 굉음이 지하실을 울렸다.
성모님상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드디어 끝이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돌 우박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것이 웬일인가.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었다.
『기적이다!』모두들 소리높이 외쳤다.
점령군은 이제 알카자르가 거대한 무덤이 됐으리라고 이는 잔병을 치러 밀고 나왔다.
폭발현장에는 깊이 70m에 사방1백m의 분화구가 패여 있었지만 알카자르의 영웅들은 여전히 지하 계단 안에서 사령관의 지휘 아래 돌진해오는 공략군을 공격했다.
끝내 저항의 시간에 힘입어 9월 27일 프랑코가 이끄는 지원군은 승리를 쟁취하고 알카자르 영웅들과 해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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