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막달레나는 앞서 순교한 최여칠의 아내요 조신철에게는 장모가 된다. 서울 구교우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는 신유박해 때 유배되어 유배지에서 세상을 마쳤고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시게 되어 조모한테서 양육되었다. 본성이 양선하고 품행이 단정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하였으며 바느질 같은 여자로서 할 일이 민첩하였다고 한다.
원래 태중교우였지만 폐가 된 가문에서 홀로 살아남은 막달레나인지라 더 이상의 불행이 두려워서 교우들과 감히 상종하지를 못하였고 불구하고 어린 마음에 늘 사주구령에 힘써 지옥의 영고를 면하고 천당영복을 차지해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그래서 교리를 조금씩 배우게 되었고 열세 살때부터 수계하기 시작했다. 열일곱 살 때 최여칠에게 출가하였고 몇 해가 안 되어 괴질로 사람들이 별안간 많이 죽어 나감을 보고 남편과 함께 일가가 모두 대세를 받았고 그 후 선교사들이 입국하게 되자 예비를 타당히 하고 성사를 받음으로 열심을 더하게 되었다. 막달레나는 자녀 열한 명을 낳았는데 그 중 아홉은 어려서 대세를 받고 죽었으므로 이제 슬하에는 맏딸 최발바라와 두 살 먹이 막내딸밖에 남지 않았다.
최발바라는 본성이 순량하고 총명하였다. 부모와 한 가지로 대세를 받았고 열다섯 살 때 강론을 들은 후로 기구와 영적 독서에 전념하기 시작하였으며 신부로부터 성사를 받은 후로는 더욱 열심을 분발하게 되었다.
스무 살 되던 해, 부모가 그를 출가시키려 하므로 발바라는 그의 소원을 이렇게 피력하였다.『문벌이라던가 귀천이나 빈부는 상관없습니다. 오로지 제가 원하는 바는 열심하고 도리에 밝은 교우와 결혼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사실 문벌과 나이에 큰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신철과 결혼하게 되었다. 이때 발바라의 나이는 스무 살이요 조신철은 44세였다. 어떻든 3년간을 같이 사는 동안 한 아들을 낳아 길렀고 서로 격려하며 독실하게 수계하였다.
점차 박해가 치열해지고 위험이 급박해짐에 따라 손막달레나는 남편과 함께 일단 조신철 사위 집으로 피신하였지만 결국 음력 5월에 두 집 식구가 모두 붙잡혀 포청으로 끌려갔다.
포장이 먼저 손막달레나를 불러 문초하기를『누구에게서 천주교를 배웠는가, 언제부터 믿었는가, 네 집에 내왕한 사람은 얼마나 되느냐, 네 집에서 몰수된 물건은 어디에 쓰는 것이며 그 임자는 누구인가, 일당을 대고 배주하여라』하며 주리를 틀었다.
막달레나가『나의 조모로부터 천주교의를 배웠고 어려서부터 수계합니다. 문제의 물건은 누가 가져오게 하였는지 자세히 모릅니다. 일당을 대면 그들이 해를 입을 것이므로 할 수가 없고 배주는 할 수 없습니다』고 대답하자 판관은『네가 한마디 말만 하면 살아 나가 네 어린 딸과 남편과 한가지로 살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
고 달래며 위협하였다.
그러나 막달레나는『제 생명은 제 것이 아닙니다. 살려고 하면 생명을 주신 천주를 배반해야 하는데 생사의 대권을 잡으신 천주를 죽어도 배반할 수 없습니다』고 대답하였다 막달레나는 도합 일곱 번의 문초를 받는 중에 세 번 주리를 틀리우고 태로 2백60대를 맞았다. 살이 떨어져 나가고 상처에서는 계속 고름이 흘러나왔다.
이때 막달레나는『만일 천주께서 나를 도와주지 않으시면 내 힘만으로는 단 반 시간이라도 나를 뜯어 먹는 저 이와 벼룩인들 어찌 견디어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분이 내게 이 고통을 이겨낼 힘을 주시기 때문이다』고 말하며 수시로 이러한 은혜를 주신 천주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다음은 포장이 막달레나의 딸 발바라를 불러 문초하기를『배주하고 일당을 대라』고 강요하고 또 한 집에서 압수하여 온 중국 물건의 출처를 물었다.
발바라가『죽어도 배주는 할 수 없습니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사람을 많이 사귄 적이 없으므로 일당은 모릅니다. 물건도 누가 가져오게 했는지 모릅니다』하고 대답하니 주리 일차를 가하고 하옥하였다. 발바라도 일곱 번의 문초 중 두 번의 주리와 태형 260도를 맞아야 했다. 옥에서 모녀는 각기 젖먹이를 데리고 있었다. 본능적인 모성애와 허약한 육정 때문에 이것으로 인하여 유혹되어 순교하는데 조당이 될까 두려워서 용감히 어린 것을 떼쳐 친척에게 보냈다.
형조로 이송된 후에도 포청에서나 마찬가지로 많은 문목과 혹형을 받았지만 모녀가 한결같이 굴복하지 않았다. 또 세 차례의 형문 가운데 곤장을 맞고 나서 결국 사형선고를 받았다. 최발바라는 감옥에서 한 교우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인즉 대략 아래와 같다.『부모와 남편과 분다(현분다를 가리킴)가 모두 치명하였습니다.
혈육에서 오는 괴로움이 오죽하겠습니까마는 천당을 생각할 때 도리어 위로가 되고 이 은혜를, 주신 천주께 감사합니다. 내 마음은 기쁨에 넘쳐 즐겁기만 합니다』
12월 27일과 28일 이틀 사이에 잇달아 모녀가 당고개에서 참수 치명하니 어머니의 나이는 39세요 딸은 22세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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