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일한 지 수 년까지도 월급을 받을 때면 귀 끝이 붉어졌었다.『타작 마당에서 일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신명기 25ㆍ4)는 말씀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마 소심한 소였기 때문이었을까. 웬일인지 전교사로서의 일과 돈이 상관 지워지는 것이 마음 편치 않았었다.
당시(1958년) 1만 환의 봉급은 쌀 한 가마값 정도였지만 부족한 것을 몰랐다. 아니, 일에 대한 애착이 돈 따위는 개의치 않겠는지도 모른다.
처음 교회에서 일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아버님께 의논드렸을 때 선친께서는『이 땅에서 한국인을 위해 헌신하는 분들이 한국인의 도움을 청할 때 거절하는 것은 인간 이하의 도리』라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그런 순수한 동기가 일에만 집착하게 하였으리라. 그런데 세월이 20년을 흐른 지금, 나는 돈의 위력을 차츰 이해하기 시작한다. 무수한 갈등과 모순을 겪고 나서 어느 낙엽 지는 거리를 낙엽을 밟고 지날 때 수많은 이상(理想) 황금의 위력 앞에 낙엽처럼 밟히는 것을 나는 가슴 저미는 고통 속에 흐느끼며 보았다. 이렇게 내가 차츰 실용성 있는 어른으로 변해가는 것일까? 처참하다.
1955년에서 65년 사이 소위 구호물자 풍년이었다 우리 본당 관할 12개 면에 할당되는 양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배급 감독을 하는데만도 1주일씩 걸렸다. 각 면에 있는 공소에 물건을 쌓아 놓고 행정 관서의 입회하에 공정히 분배한다. 그러나 아무리 공정히 하려 해도 모자라면 곤란하므로 자연히 재고가 남게 된다. 이 재고품이 항상 말썽이다. 관리들은 합법적으로 걸릴 것이 없으니 제 물건이나 된 듯이 넘겨다 보았고 신설 공소 교우들은 이를 처분하여 교회 비품을 장만하자고 했다. 둘 다 부당한 짓들이었다. 일축하고 다음 배급시까지 남겨 두었다가 더 분배하든지 혹은 그 안에 어려운 이가 생기면 도와주곤 했다.
그러기를 계속하자 어느날 십여 명의 교우들이 찾아와 뒷책임은 자기네들이 질 터이니 물건을 팔아 종과 시계를 사자는 것이었다. 구호의 정신이 무엇인지, 그 물건이 어떻게 온 것인지 차근차근 설명했지만 끝내 화들을 내며『회장님은 아직 사회를 모르는 철부지입니다.
좀 융통성을 배우십시오!』했다. 이에 응수하여 냉소하며 말했다.『내가 사회를 모르는 철부지일지 모르지만 그런 돈으로 사서 단 종은 비만 오면 녹아버릴 것이오. 밀가루로 만든 종이니 녹을 것이 뻔하지 않소?』
금력(Mammon)은 사탄의 액세서리에 틀림이 없다. 어떤 때는 광명의 천사로 통째 꺼내어 피 흘리며 먹는다. 심장을 잃고 백짓장처럼 된 얼굴들이 훈장까지 달고 행진한다.
1965년-. 30만 평 수몰지구에 제방공사가 있었다. 당시 1천만 원 공사. 지금 돈으로 수억 원대 공사이리라. 6개월 완공 예정에 동리민들이 3천만 원에 해당하는 토지를 주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일에 본당도 모르게 어찌어찌 되어서 6백만 원에 해당하는 구호 양곡이 지원된다는 구제회의 통지서가 도착했다. 결국 시공주는 4백만 원을 투자하고 3천만 원을 벌게 된다. 이 물자를 관리하는 데 책임을 진다는 본당신부의 서명을 속히 보내 달라는 독촉이 왔다. 처음부터 변칙적인 일이기에 당장 거절하시도록 했다.
구제사업으로 지원해 주던 당시 사정은 본당 관할 내에 임의의 개척사업을 하게 되면 능히 가난한 부락 사람들이 가난해서 그 일을 하다 보면 그들의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부락민들에게 그 식량의 일부로 지원될 성질의 것이었다. 그야말로 글자 그대로 구제 물품이라야만 되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가진 자를 더 많이 가지게 하는 일에 우리를 협력하게 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거절하기로 원칙을 세우고 경위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러자 금력에 취한 많은 사람들이 벌떼처럼 찾아왔다. 노다지를 발견한 집념의 사내들-. 전직 장성 전직 교수 모모 사업체의 사장족들, 그 위에 교회의 고위 성직자를 업고 오는 얼간이들 등등. 자기 편에 동조하도록 온갖 수단이 동원되었다. 골치 아프고 얼떨한 며칠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날 수화기를 들자, 자기는 신자라고 소개하고 나서 조용히 할 얘기가 있으니 모다방 밀실로 잠시 나와 달라는 교양과 애교가 섞인 음성이 들렸다. 별다른 생각없이 찾아갔더니 점잖게 생긴 노신사와 모령의 아가씨가 반긴다.
인사가 끝나고 용건을 물었더니 자기가 본의 아니게 그 사업장에 끌려들어가 있고 자기는 원래 시인 아무개의 친구로서 일본 모대학 출신으로 돈이란 모르고 지냈다는 점, 이 사업이 되지 않으면 자살할 상황에 있다는 것 등을 아가씨의 보조를 얻어 눈물 섞어 장시간 들려준다. 이쪽의 구제사업의 의의와 입장을 설명하고 일어서자 황급히 두 사람이 손을 잡아 앉게 한 후 2백만 원 보증수표를 내 놓는다. 당시나의 봉급 삼천오백 원.
50여년의 월급에 해당하는 실로 막대한 돈이다.
그러나『선생님, 선생님은 1천만 원에 우시지만 우리는 1천만 원 이상의 가치 때문에 울어야 합니다!』뒤돌아보지 않고 나와 버렸다. 돈이여! 그대들은 언제까지 우리들 앞에서 춤을 출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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