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아가다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든 재질을 타고난 이상적 여성의 모델이었다. 특히 남달리 뛰어났던 그의 미모는 한때 교회 안에 큰 물의를 일으켰고 선교사가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을 정도로 교회에 막대한 손상을 입혔다. 그러나 권아가다는 자신의 과거를 진실히 뉘우쳤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순교를 통하여 완전히 속죄함으로써 후세에 복녀의 영예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한국의 막달레나 성녀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권아가다는 한 달 앞서 순교한 한막달레나의 무남독녀이다. 한막달레나는 권 진사의 후처로 들어가 아가다를 낳았는데 권 진사는 생전에도 아내에게 여러 번 입교를 권고하였고 임종 석상에서도 간곡한 권고를 잊지 않았다.
남편의 유언을 따라 한막달레나는 천주교를 믿기로 결심하고 그래서 아가다를 데리고 교우 집에 부쳐 지내게 되었다.
아가다는 장성하여 어느 시골 교우에게 출가하게 되었다. 일단 혼례는 치루었으나 남편이 가난하여 아가다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지 못했다.
남편이 정하상과 일가 관계였으므로 아가다는 당분간 정하상의 집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중국인 유빠치피꼬 신부가 입국하여 정하상의 집에 거처하게 되었고 아가다는 신부 곁에서 시중 들게 되었다. 원래 아가다는 아주 총명하고 재주도 비범하였으므로 곧 신부의 총애를 받게 되었고 얼마 안 가서 유혹을 입어 신부와 불의의 관계까지 맺게 되었다.
유 신부에 이어 입국한 빠리외방전교회원 나 신부가 이 사실을 알고 유 신부를 본국으로 송환시키는 한편 아가다를 불러 잘못을 깨우쳐 주었다.아가다는 나 신부의 자부적인 권고에 감동되어 개과천선 하기로 굳게 결심하고 어머니 곁으로 돌아와 기구와 묵상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타락과 이로 인하여 교회에 입힌 스캔달을 속죄하고 보상하려는 뜻에서 늘 순교에 대한 간절한 소원을 피력해마지 않았다.이 무렵 의지할 데 없는 이아가다가 찾아와서 권아가다의 집에서 부쳐 지내게 되었다.
이아가다는 시골에서 여러 대 이래 천주교를 봉행하는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결혼할 때 모르고 고자에게 출가하였다가 친정으로 돌아와 지내는 동안 범 주교에게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주교가 그 결혼을 풀어주었다. 이제 아가다는 친정에 남아 사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나 부친을 일찍 여읜데다 유산도 탕진된 후라 거처할 집이 없어서 모친은 시골 동생 집으로 내려가고 아가다는 서울로 올라와 권아가다 모녀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권아가다 모녀와 이아가다 세 사람이 서로 의지하며 독실히 수계하고 있을 때 돌연 기해년 6월 7일(7ㆍ17) 한밤중에 포졸이 달려들어 모두 잡아 포청으로 끌고 갔다. 종사관이 기초 신문을 하더니 손막달레나만을 포청에 가두고 두 아가다와 잡혀온 여종은 따로 사관청에 가두는 것이었다.
때에 유다스 김여상이가 와서 같이 도망하자고 권아가다를 감언으로 유인하였다. 권아가다는 일축하였다. 그 후 또 포졸들이 와서 그녀들의 젊고 아름다운 용모에 매혹되어 그들을 유괴하려는 속셈에서 우선 도망하게 하였다.
이 사실이 국왕에게까지 알려지자 임금은 엄한 교지로써 포장을 파면하고 파수하던 군졸 한 명은 사형에 처하고 두 명을 정배보냈다.
또한 갇혀 있는 교우들의 고문이 일층 가혹하여지고 감시가 삼엄해졌으며 감방의 문을 밤낮으로 잠그게 하였고 한편 달아난 사람을 사방으로 수색하고 추적하는 바람에 새로 교우 10여명이 잡혀 들어왔다.
감옥에서 탈출한 두 아가다는 교우 집을 찾아 피신하였는데 정아가다는 그들의 피신 경위를 이렇게 증언하였다.『우리집 부근 한 교우집에 피신하였으나 도무지 안전하지가 않아서 부친이 오막살이를 만들어 숨겨 주었다. 그러나 근처 양반이 이 오막살이 집을 보고 하인을 시켜 헐어버리니 두 아가다는 하는 수 없이 다른 교우 집으로 가서 별장에 숨었으나 거기서 하루 이상 견딜 수 없어서 결국 우리집으로 와서 숨었다. 그들과 하룻밤을 지냈는데 그때 권아가다의 말이『우리가 감옥에서 탈출한 것은 포졸 한 명이 나를 유괴하려 했기 때문이다』고 하며『네가 지금까지 영세하지 못한 것은 문답을 배우지 않은 때문이다. 그러니 문답을 익히도록 힘쓰라.
그리고 영세하게 되면 나처럼 아가다란 본명을 택하라』고 덧붙였다. 다음날 밤에 포졸들이 급작히 습격해 와서 두 아가다를 체포하고 식구들은 모두 붙잡아 가려 했으나 두 아가다가『그들에겐 조그마한 잘못도 없습니다』고 간청하므로 두 아가다만 잡아갔다. 그러나 이튿날 다시 와서 우리 부모를 잡아갔다. 두 아가다가 다시 잡힌 것은 같이 달아났던 여종이 그들의 은신처를 밀고한 때문이라고 한다.
도망쳤던 죄로 포청에서의 문초와 고문이 일층 가혹했지만 두 아가다는 종시 굴복하지 않았다. 결국 형조로 이송되어 사형 언도를 받고 12월 27일 당고개에서 순교를 완수하고 동정과 순교의 이중의 월계관을 차지하니 권아가다의 나이 21세요 이아가다는 27세였다. 권아가다는 옥 중에서 편지를 보냈는데 그 권면함이 너무나 간절해서 보고 듣는 자 모두 감동했다고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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