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실상 직업에 따라서도 각각 다른 힘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우리나라에서 통용되고 있는 사랑의 자본은 여성들의 남성관에서 잘나타나고 있습니다. 여대생들이 장차의 남편감의 자격 조건을 내거는 것으로는 인성(人性) 성실(誠實) 건강 학벌 재산 가문 등이 꼽혀지고 있습니다. 우선 순위는 각자의 취향이나 환경에 따라서 다르지만 대체로 조건이 된다는 범위는 비슷합니다. 인성이란 말할 것도 없이 주로 마음씨를 말합니다. 관용성이라든가 인내성이라든가 동점심이라든가 우정이라든가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성이 좋아야 된다는 요구가 점차많아지고 있는 것은 사회적 관계가 생활에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견해라고 보겠습니다.
성실이란 결국 인간의 모든 일이 성실만 하면 된다는 말하자면 인생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살려는 쪽 사람의 견해입니다. 부부생활에서도 성심성의만 다하면 비록 경제적으로 좀 부족해도 또는 학벌이 좀 모자라도 다 극복될 수 있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종교적인 분위기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강이 좋아야 된다는 것은 위의 성실과 대단히 유사한 것이지만 성실은 건강을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에 대하여 건강이 성실을 낳는다고 믿는 쪽이라고 보겠습니다. 사실 건강이란 기본 조건이기 때문에 그것 없이는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학벌을 결혼 조건에 크게 고려하는 경향이 우리 풍토에서는 지나치게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것은 물론 학벌은 다른 조건을 다 함께 포함하는 평가 기준으로서 고려되기 때문인데 그것은 또 우리의 학제가 사실 어느 면에서는 그러한 평가를 낳도록 해주고 있고 또 사회 구조가 그렇게 고착되어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재산 즉 경제적 조건은 생활에 있어서 제의될 수 없는 것이지요.
인간이 빵만으로 사는 것은 물로 아닙니다만 빵만으로 못 산다고 해서 빵 없이도 산다고 하는 비약이 용납될 수는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빵문제가 선결문제입니다. 그것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무시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너무도 경제일변도 물질일변도 황금만능주의로 인간의취향이 기울어지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이 듭니다.
돈이면 최고다, 돈이면 무소불능이다는 사고가 사회의 모든 면에 팽배하고 있는 상황하에서 사랑이란 것이 홀로 돈을 배척하고만 있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우는 아이도 돈을 주면 그치고 학동은 돈을 주어야 공부를 하고 선생은 돈을 주어야 공부를 가르치고 의사는 돈을 주어야 입원시켜주고 심지어 인간을 가장 정신적으로 돌보는 종교의 세계에서조차 돈으로 은총을 흥정한다는 풍조가 생긴다고 한다면 이 세상은 어지간히 돈의 세상이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그렇게 고질적으로 결혼에 또는 입신출세의 자본이던 가문(家門)이란 것이 점차적으로 그 힘이 쇠퇴해가고는 있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가문이나 혈통이란 것은 만약 그 사회가 안정된 것이라면 다른 무엇보담도 중요한 자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미의 역사 있는 민족 사회에서 이 가문을 중시하는 것은 그들이 우리보다 후진이라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 사회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문과 혈통은 곧 그 사람의 인생을 대변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가 불안정한 곳에서는 가문이나 혈통은 별로 권위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문이나 혈통이 조변석개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그것은 영속성이 없고 또 일생을 보장할 아무런 근거도 갖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한편 사람에 따라서 또는 직업에 따라서 그 사랑할 자본으로써 실력이 각기 다르다고 했는데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하면 이런 것입니다.
노동자에게는 노동자로서의 실력、즉 노동력이 강해야 합니다.
노동자가 노동력은 없고 노래만 잘 부른다고 하면 그것은 노동자의 실력이 될 수 없습니다. 군인은 군인의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군인의 실력은 날카로운 무술과 불퇴전의 용기와 기백입니다. 정치인은 오로지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데 정의와 양심과 이타(利他)로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도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기(利己)에만 몰두하고 보면 사랑의 힘은 있을 수 없습니다. 줄거리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나 군인이나 자기의 실력이 없이는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자식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 필요한 사랑의 자본이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은 학생을 사랑하는 데 지식과 인격으로써 합니다. 지식과 인격이 없는 선생님은 결코 학생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의사는 의술과 인격을 갖추어야 환자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 가는 학생은 선생님에게 무언가를 배우기 위하여 가고、의사를 찾아 병원에 가는 환자는 무슨 병을 고치자고 가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자면 자본이 있어야 하겠는데 그 사랑의 자본은 그래서 사람에 따라 직업에 따라 다르다고 하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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