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간지방의 겨울은 유난히도 길었고 극성을 부렸다. 계속되는 강추위로 모든 것이 얼어붙었고 강물도 물론 꽁꽁 얼어붙은 어느 해 겨울. 건너 마을에 있는 교우집을 방문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살을 에이는 듯한 강바람은 꼭꼭 여며 입은 옷 속으로 사정없이 파고들었고 손과 발 얼굴은 아예 감각조차 없을 정도로 얼어버렸다. 눈과 얼음으로 덮혀버린 강물을 건너야 했을 때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얼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살금살금 건너기 시작、강물 한가운데 채 못 갔을 때「와지직」하는 소리에 심장이 멎는 듯했다. 앞으로 전진할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기도뿐이었다.
베드로에게 물 위를 걸어 당신께 오라고 명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쳤다. 잠시 용기를 얻었지만 여전히 두려움과 공포 속에 강을 건넜을 때 몸은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다. 뒤를 돌아다보니 깨어져 금이 간 강이 아득하기만 했다.
교우라곤 딱 한 집밖에 없는 마을에 이렇게 생명을 내걸고(?) 찾아간 나는 그 마을 전체의 구경거리이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발목까지 덮었던 검은 수도복과 머리를 감싼 검은 수건은 산골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어느새 소문이 돌았는지(시골은 소문이 지독히도 빠르다) 교우집에는 수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기 위한 구경꾼으로 꽉 차곤 했다. 뜻밖의 수녀방문을 받은 교우는 그들의 겨울 양식의 일부분이 분명한 고구마를 푸짐하게 삶아서 내놓았고 나는 일일이 돌아다녀야 하는 수고 없이도 많은 이들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눌 수가 있었다. 고집스럽기는 하지만 직선적이고 우직한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나는 순박하고도 꾸밈없는 그리스도의 형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 내가 몸 담았던 본당에서는 매월 첫 금요일은 환자들을 방문、봉성체를 영하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연세가 지긋했던 본당 신부님은 성체께 대한 특별하고 깊은 신심을 가지고 계셨던 분이었다. 매월 첫 금요일 신부님 수녀 2명 전교회장을 한 팀으로 한 봉성체 행렬은 오전 오후로 나뉘어 거행됐다.
맨 앞에 전교회장을 선두로 수녀 한 명 신부님 또 수녀 한 명의 순으로 정해진 이 봉성체 행렬은 눈비가 오는 궂은 날에는 물론 아무리 험한 길에서라도 그 순서가 바뀌어서는 안 된다. 시작부터 끝까지 침묵 속에 진행되어야 하는 봉성체 거동 절차는 무척이나 까다로운 것이었다. 봉성체를 맞는 교우집은 성체가 굽히지 않고 들어갈 수 있도록 큰 대문 양쪽을 모두 열어야 하며 집안 청소와 함께 온 가족이 성체를 맞을 준비를 철저히 해야만 했다.
봉성체 맞을 준비가 안 된 가정이 있을 때 신부님은 준비가 될 때까지 장궤를 하고 기다리셨다. 이렇게 정성과 수고를 다해 찾아오신 성체와 신부님께 미안한 마음도 없는지 매번 준비를 못하고 신부님이 오셔야만 허둥대는 가정이 꼭 있기 마련이다.
반면 깨끗한 상을 마련하고 그 위에 상보를 깔고 상 양쪽에 두 개의 촛불과 십자고상까지 준비하고 몇 시간이고 끓어앉아 기다리던 한 나환자 가정이 있었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그 나환자 가정이 성체를 맞기 위해 준비하던 정성은 지금도 성체를 대할 때마다 되살아나는 흐뭇한 장면이었다. 뿐만 아니라 엄격할 정도로 성체께 대한 신심이 강하셨던 그때 신부님의 산 교훈은 지금도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를 일깨워주는 커다란 채찍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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