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남편의 묘비 앞에 선다.
어느덧 가신 지 십칠 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턱없이 짧은 세월이다.
행복에 찬 화천부대의 신혼 시절…
그의 전사 소식을 듣고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무너져 기운을 차리지 못했던 그날, 그리하여 아이들을 위해 닥치는 대로 막일을 해야 했고 가신 분의 전우들과 따뜻한 사회의 온정으로 오히려 다른 이에게 봉사하기까지 그 숱한 일들. 이제 묘비 앞에 서서 조용히 지난 일을 돌이켜본다.
나는 스물네 살에 아들 하나와 뱃속의 아이 여덟 달 된 만삭의 몸으로 전쟁 미망인이 되었다.
우리들의 결혼을 반대하여 내왕이 없던 부모님께서는 아이들을 친정에 맡기고 새 출발을 하라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나는 남편의 부대가 있던 화천에 머물면서 푸른 제복의 병사들과 총소리를 들으며 살고 싶었다.
『부대장님, 콩나물을 길러 장병들의 취사장에 납품하면서 이곳에서 살 수 없을까요?』
나는 병영 장병들의 위로를 받으면서 고된 줄 모르고 일했고 콩나물 공장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일 개 분대의 콩나물밖에는 납품하지 못했지만 2년 만에 대규모로 종업원까지 두고 1개 군단에 군납하게 된 것이다. 은혜를 잊지 못해 늘 고마워 하는 내게 부대원들은 모두 목숨까지 바친 남편 강 대령에 비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전우애일 뿐이라고 말했다.
7년의 세월이 흘러 아들 동수와 남편이 채 얼굴도 못 본 동호가 취학하게 되자 나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서둘러 서울로 향했다.
정든 산천, 이따금 울적한 마음일 때면 사격장이 바라보이는 언덕에 올라 남편과 더불어 사격을 즐기던 때를 되새기고 혼자 사격 연습을 하던 고장…
따뜻한 전우애가 깃든 이곳을 떠나는 것이 한없이 서운하고 아쉬웠다.
『이대로 부인을 떠나 보내기가 어렵군요. 남달리 생활력이 강한 분이라 서울에 가셔서도 새로운 개척을 하실 수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만…혹시 어려움이 있으면 제게 연락하십시오. 옛 전우들과 상의해서 힘 닿는 데까지 도와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힘을 내겠어요.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여러분의 격려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굳건히 개척하겠어요』
나는 서울에 와서 친척에게 등사 기술을 배웠다. 정부기관에 호소하니 다행히 일거리가 생겼고 등사판을 한 대 구입할 수 있었다. 등사판을 돌리기 시작한 지 불과 1년 만에 인쇄소를, 2년 만에는 출판사를 차릴 수 있게 된 것은 나 자신도 놀랄 만한 일이었다. 아이들의 교육비도 넉넉했다. 그러는 중에 삯바느질을 하고 있는 한 전쟁 미망인을 만나게 되었다. 시름시름 앓고 있는 아들을 돈이 없어 병원에도 못 데려가는 형편이었다.
『저도 실은… 전쟁 미망인입니다. 이렇게 고생하시는 분을 뵙게 되니 제 처지는 나은 편이어서 죄송스런 마음이 드는군요. 조그만 호의입니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게 하시지요』
전몰군경 미망인회의 업무국장직을 맡게 되면서부터 나의 일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심신의 피로를 풀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태능과 사직공원에 있는 사격장을 찾았다. 스물둘의 나이에 일선지구에서 남편과 즐기던 사격 취미 그것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지속되었고 두 아이들의 사격 솜씨도 늘어 둘째 아이는 금메달을 밭기도 해 감격스러웠다.
이 즈음 전국 척추 장애자 체육대회가 가을에 열리는 국제대회 참가 선수 선발과 겸하게 되자 체육대회는 많은 경비가 부족해서 유산될 지경에 이르렀다. 『남편의 일은 곧 제 일이 아니겠어요. 그분이 생존해 계셨더라면 절대 여러분의 곤경을 그대로 보아 넘기지는 않았을 겁니다. 저도 여러분의 난처한 처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요. 제가 척추 장애자 체육대회의 경비를 대겠습니다』나의 인쇄소와 출판사의 번영은 결코 내 힘으로 된 것은 아니었다. 남편의 희생을 추모하는 후원으로 이루어 진 것이라면 수익금은 응당 전우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었다. 결코 나 개인이나 가족들이 독점할 재산은 아닌 것이다.
어둠이 깔리는 국립묘지는 아름다웠다.
나는 조용히 남편의 묘비에 손을 댄다.『여보 내가 갓 스물을 넘어섰을 때 부모님 말씀대로 당신과 결혼하지 않고 미국에 유학가 있다는 그 청년과 결혼을 했다면 지금 어떤 여자가 되어 있을까요. 아마 평범한 아내로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당신을 남편으로 한 자랑스러움, 기특한 아들들을 길러낸 어미로서의 기쁨은 맛보지 못하겠죠. 지금도 그늘에서 슬퍼하고 있는 수많은 전쟁 미망인들의 존재를 알 리 없을 거예요. 당신의 전우들을 도와드리는 데서 얻은 이 벅찬 보람을 어떻게 느낄 수가 있겠어요! 그러기에 그 많은 날들을 눈물로 지냈어도 나는 당신의 아내 된 걸 후회도 원망도 않습니다. 난 행복해요. 앞으로도 보람을 안고 제 힘 닿는 데까지 일을 할 거예요. 당신이 다하지 못한 몫을 제가 한 데 모아 할 것입니다』
나는 지금 체육계에서 KOC 상임위원 대한여성사격연맹회장 대한체육회이사 사회체육교육 여성분과위원장 등 네 개의 직책을 맡고 있고 앞으로 신체 장애자 사격대회를 비롯한 상이군경 그리고 전쟁 미망인과 그 자녀들을 위해 나의 온 정성을 바칠 결심이다. 그것이 내 삶의 보람이요 조국을 위해 몸을 바친 남편의 유지를 부끄럼 없이 받드는 길인 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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