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경천」이라고도 불리던 이요왕은 경기도 이천 지방에서 출생하였는데 가문은 양반이고 또한 대대로 성교를 믿어오던 구교우 집안이었다. 겨우 나이 다섯 살에 부모를 다 여의고 의탁할 데 없는 고아가 되어 버렸다. 다행히 한 교우의 알선으로 서울의 여교우 오발바라가 요왕을 데려다 양자로 키웠다.
요왕은 본시 수정할 마음을 먹고 있었으나 양모가 결혼할 것을 간곡히 권하므로 하는 수 없이 결혼하였다. 아내와 열심히 수계하며 자녀 둘을 두었으나 미구에 아내와 자녀를 모두 잃었다. 사람들이 재혼할 것을 권해마지 않았으나 이번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선교사들의 입국을 계기로 하여 성사를 타당히 준비하여 받은 후로 요왕은 열심을 배가하였다. 또 하나 신부 곁에서 일 년 이상 복사하면서 그의 전교생활을 도와 드리기도 했다.
기해년 박해를 당하여 요왕은 위험을 무릎쓰고 의연금을 거두어서 옥중 교우들의 생명을 도았다. 주교와 신부들은 다시골로 피신하였으므로 그들에게 수도의 정세를 알리기 위해 여러 번 지방을 내왕하였다. 그러나 박해는 치열해져서 결국 주교와 신부들은 물론이요 지도급 교우들도 거의 다 잡히게 되니 요왕의 신변도 매우 위험해졌다. 요왕은 피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교 신부들의 일이며 옥 중 교우들과 피신 중의 교우들의 딱한 사정을 돌보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요왕은 이리저리로 두루 피신해가며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주교와 신부를 위시하여 많은 교우들이 잇달아 순교하게 되며 요왕은 7ㆍ8명의 교우와 여러 날 상의한 끝에 밤을 이용하여 순교자들의 시체를 걷우어 장사하였다.
그 후 요왕은 시골로 피신할 결심을 하고 마지막 밤을 서울 어느 교우집에서 지내러 갔을 때 바로 음력 10월 6일 밤 중에 허다한 포졸들이 달려들었다. 처음에 요왕은 당황했으나 곧 다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혼잣말로『격의의 부르심을 어찌 사양하리오』라고 도리어 포졸을 재촉하여 포청으로 따라갔다.
날이 밝자 포장이 요왕을 흥사로 결박시켜 꿇리고 성명과 내력 그리고 선교사들에 관해 심문하였다. 이미 다 드러난 것이었으므로 요왕은 자초지종을 자세히 고하였다. 그러자 포장이『너는 가문도 좋고 나이도 젊으니 문무(文武)간에 입신양명하는 것이 세상의 영광이거늘 하필 사도(邪道)를 좇음으로 국명(國命)을 배반하여 욕되게 죽으려는 것이 무엇 때문인가. 이제라도 취소하면 대신에게 아뢰어 살려줄 것이니 생각해 보아라. 저 무식쟁이들 모양 아무 까닭 없이 죽으려 하느냐』고 말하였다.
그러나 요왕의 대답은 이러하였다.『호생오사(好生惡死)는 인간의 상정인데 어찌 즐겨 죽으려 하오리까마는 만일 국명을 들으면 천지신인 만물을 내신 대군대부를 배반하는 것이오니 죽사와도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말씀하시는 모든 사정은 이미 숙고하고 결심한 바이오니 더 이상 묻지 마옵소서』또한 술을 권하며 만단으로 꼬여 보았으나 소용이 없으므로 하옥시켰다. 얼마 후 종사관이 잡아내어 심문하기를『필경 네게 일당의 소굴이 있을 것이다. 또 네 옷차림이 가난해 보이지 않는다. 바로 대고 배교하라』고 하며 곤장으로 20도를 때리는 것이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흘러 기운이 핍진한 것 같아 고문을 중단하고 옥에 가두었다. 그것은 도적들의 감방이었는데 거기엔 배교한 교우들도 있었다.
그들을 보고 요왕은 놀라고 공포에 사로잡혀 탄식하며『나보다 낫게 수계하던 저 사람들이 이렇게 된 것을 보니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 주모의 흥은만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요왕은 형조에서 12월 22일자로 유가족에게 긴 편지를 써 보냈는데 여기서 형조에서 문초 받은 사실을 이렇게 전하였다.『10월 20일에 판관이 나를 불러내어 보통 이상으로 곤장을 때리게 하였습니다. 내 힘만으로야 어떻게 그것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천주의 도우심과 성모 마리아와 천신 성인과 우리 모든 순교자들의 전구하시는 덕택으로 거의 괴로운 줄을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은혜는 도저히 갚을 길이 없으며 그러므로 내 목숨을 바쳐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 행동은 이렇게도 규율이 없고 내 힘은 이다지도 약하니 부끄럽고 두려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그간의 순교자들의 편지가 모두 그러하였듯이 우리는 순교자들의 편지를 읽을 때마다 특히 이요왕의 편지를 읽을 때 천주님의 은총의 기묘하고 역력한 효과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요왕의 편지는 또한 성모 마리아께 대한 그의 신심이 비범하였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특히 성모 마리아의 전구하심을 잊지 말고 구하십시오. 그러면 청하는 것을 반드시 받게 될 것이오. 만 명 중에 한 사람도 거절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그는 지상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비록 양모였을지라도 친어머니처럼 꼭 같은 효성과 존경으로 대하였고 잡히기 전에 한 여교우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옥에 있은 지 근 3개월 마침내 12월 28일 다른 두 동료와 함께 당고개에서 참수로 그의 순교를 완수하니 때에 그의 나이 31세였다. (계속)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