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작용에 있어서는 교육 받은 아동과 교육하는 교사가 보다 더 밀접하게 상호작용할 것임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버(Buber.M)와 같은 철학자는『너의 나, 나의 너』라고 표현했습니다. 온전히 교사의 아동, 아동의 교사라는 관계에서만 교육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아무리 교육의 기술, 교육하는 기계가 많이 발명 발전되더라도 그것에게 일단 교육의 전부를 맡기기에는 부당하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곧「나의 기계」는 될 수 있어도「기계의 나」는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유기물로서 인간이 무기물인 기계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상에서 말씀드린 것은 주로 인간 형성에 관계되는 이야기들이지만 교육은 외적으로 형성되는 것만이 아니라 내(內)로부터의 각성(覺醒)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다만 물질적으로만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적으로 존재하는 때문입니다. 앞에서 제닝(Jenning)의 동물 실험을 예로 들어 보았지만 사실 영혼적이란 말은 경험이나 실험 이전의 것입니다. 요즘 소위 심령과학(心靈科學)이란 말도 있고 또는 주역(周易)의 해설에서는 영파(靈波)란 말도 쓰이고 있습니다. 영파란 영혼의 파도를 말합니다. 여하간 인간의 영혼면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데는 이견(異見)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말해서 교육을 하는 주체는 교사이지만 교육되는 주체는 학생 피교육자ㆍ아동ㆍ생도입니다.
『그러면 교육의 주체가 누구입니까?』교육의 주체는 아동일 수도 있고 교사일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위에서 말한 것입니다.
가령 학습의 주체는 아동이고 교육의 주체는 교사라고 할 때는 학습을 피교육자의 일로 교육을 교육자ㆍ교사의 일로 규정하는 데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정신적이고 영혼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교육을 설명한 사람 가운데는 소크라테스가 가장 으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딜포이신전(神殿)에 있는 소크라테스의 교훈이 바로 그것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이 신전에 새겨지기 훨씬 이전 소크라테스가 한창 제자들을 데리고 설교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소시절의 여러 친구들 가운데서도 가이레폰이란 사람은 아무래도 소크라테스의 그 위대한 지혜와 덕(德)진리가 믿기지 아니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는 어릴 적 소크라테스의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는 처지이며 조금은 질투가 작용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왜 하필이면 소크라테스를 위대하다 현명하다 스승이라고 하는가에 대해서 회의(懷疑)를 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지중해 연안에는 많은 도시국가가 있었고그 지역마다에는 내로라 하는 위인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가이레폰은 세상의 위인 현자를 다 찾아보고 소크라테스를 시험해 보기도 한 것입니다. 어느 곳을 가도『내가 현자로다』『내가 지자(智者)로다』
『내가 덕자(德者)로다』하는 위인들이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스런 일은 그렇게 자칭 지자다, 현자다, 덕자다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소크라테스의 학덕(學德)에 대해서는 아무도 예외 없이 칭송하고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에 그는 소크라테스에게로 왔습니다.『내가 세상의 모든 지자 현자들을 다 만나봤네만 소크라테스자네 이름을 능가하는 위인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네. 도대체 자네는 무엇을 그렇게 많이 알아서 세상의 많은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있는가?그 지혜를 나에게도 하나 가르쳐줄 수 없겠는가?』『자네는 대단히 많은 수고를 했겠네. 그리고 자네의 그 열성에 감탄하며 동정하는 바일세. 그런데 가르칠 지혜는 없네. 나는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네』『그렇다면 자네를 따르는 그 숱한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친단 말인가?』『그래 정말 그렇군.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아는 것은 꼭 그 한마디뿐일세. 내가 모른다는 것 말일세!』가이레폰은 그 말을 듣자 시무룩해졌습니다.
가만히 명상에 잠겼습니다. 가이레폰도 소크라테스도 말이 없었습니다. 한참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고 그 침묵은 금으로 변하였습니다. 가이레폰의 얼굴에도 소크라테스의 얼굴에도 희열에 찬 빛나는 눈동자가 서로를 갈구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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