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신무용의 개척자이며 한국무용 반 세기의 산 증인 무용가 조택원(프란치스꼬ㆍ69세)씨가 지병인 위암으로 8일 세상을 떠났다.
1927년 무용계에 데뷔, 57년 일본「히비야」공회당에서 은퇴 공연을 갖기까지 30년을 험난하고 고된 예술의 길을 걸었던 한국 무용계의 원로 조택원씨의 생애는 한마디로 풍운 50년.
1907년 함남 함흥 조부가 당시 군수이던 양반집에서 태어난 그의 무용 생애는 20세 때 일본 무용가 이시이ㆍ바꾸(石井漠)의 서울 공연에서「진짜 무용」을 본 이후부터 시작된다. 일생을 무용에 바칠 것을 결심, 渡日한 그는 이시이 무용연구소에서 4년간 발레ㆍ모든댄스 등을 수업 받고 33년 귀국했다. 당시 37년 渡佛,「고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 댄스」로 파리쟌들을 매혹시키기도 한 그는 46년 건국 후 격동기 서울 명동성당(당시 주임ㆍ윤형중 신부)에서 영세, 가톨릭에 귀의했다.
한국춤을 추며 집시 모양 세계를 떠돌아다닌 외롭고 먼 그의 방랑의 길은 이승만 대통령의 미움을 산 47년부터 4ㆍ19가 일어나던 60년까지 계속된다.
그의 춤은「폭포수처럼 맑고 격정적인 예술성」을 지닌 춤으로 높이 평가받으면서 이사도라ㆍ던칼과 더불어 세계적인 맨발 무용의 창시자 로트ㆍ세인트ㆍ데니스 여사와 세계적 안무가 안나ㆍ리카르다에게 한국 무용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47년 출국 당시 경향신문 사장이던 양기섭 신부와 54년 프랑스1류 가톨릭잡지「미시」지주최공연의 계기를 마련해준 박교영 신부(현 서강대 문리대학장) 등그의 예술성을 깊이 이해하는 친구들의 도움이 50년 무용 생활을 지탱해준 큰 힘이 었다고 늘 말해 왔다.
14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그는 은퇴했음에도 불구, 69년 국립극장 전신인 한국 민속무용단 창립, 70년 대판 엑스포 장기공연, 그해 12월 동남아 순회공연 등 한국무용의 발전을 위해 계속 뛰었다. 50년 동안 국내 공연 3백 회 세계 공연 1천 회를 기록한 그의 수백 편 창작품으로 그 중「가사호접」「춘향전조곡」「부여회장곡」「신노심불노」「학」등이 대표작. 생전에 무용을 천시 여기는 풍조가 개선되지 않음을 안타까와한 그는 66년 서울시 문화상 73년 예술원상 74년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 1호를 수상하는 영광을 차지했다.
이제 그는 작품「가사호접」에서처럼 장삼 입고 고깔 쓰고 나비처럼 훨훨 날아갔다. 그러나 그가 남긴 무용에의 헌신 애착 공헌은 그를 아끼던 많은 이의 가슴 속에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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