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에는 헌병 중사였던 내가 불의의 사고로 척추를 다쳤고 어머니의 눈물겨운 간호로 휠체어를 타고 제대했다는 얘기……그리고 보상금 2백만 환으로 전기상회를 차렸으며 결혼을 하게 되어 척추 장애자로서 불안하게 아이를 기다리게 되었다는 얘기를 소개해 드린 바 있다.
그러나 친구 박모가 그렇게도 성공을 장담하고 큰 단체에 납품까지 한다던 상회는 드디어 그 허실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있는 돈을 다 지출하여 충분한 예산으로 시작한 전기공사가 부정이라는 것이었다.
팔다리처럼 믿었던 친구 박모는 바로 사기꾼으로 휠체어에 앉은 나는 그의 비열한 폭리를 몰랐던 것이었다.
나는 실망만 하고 앉아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번 일을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하고 상회를 정리하였다.
남은 물건은 그래도 사정을 이해하는 의용촌으로 가져가 싼 값으로 넘기고 고향인 대구로 돌아왔다.
대구에 머무는 동안도 불구의 설움은 그칠 줄 몰라서 날치기들에게 짐을 빼앗기기도 하고 부산에 가신 아버지가 여관 이 층에서 떨어져 뇌진탕을 일으켰으니 빨리 치료비를 달라는 사기꾼에게 속기도 하였다.
망해버린 전기상회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시는 부모님은
『울산 전기상회는 어떻노. 하모 매사를 차근차근 욕심 내지 말고 해 나가야 한데이』
나는 차마 걱정을 끼쳐드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도 울산에는 자주 안 갈랍니다』
『응야! 이왕사 박씨에게 맡겼으므 끝까지 믿어야제 잘 생각했다. 잊지 않을 정도로 다녀오는기라 잉!』
냉혹한 사회와는 달리 착하시기만 한 부모님이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어딘가 소녀 티가 가시지 않은 내성적인 아가씨가 고맙게도 선뜻 응해 주었고 나는 그저 고마운 가운데 늘 원하던 육영사업에의 뜻을 추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흔히 휠체어에 앉은 사람에게 낯을 찌푸리기 일쑤인 사회에서 나는 친절한 한 소년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충북 영동군 상촌면이 고향이라며 고등학교가 있는 이곳 대구로 무작정 고학을 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너 먼저 고향에 가 있거라. 내가 비용 준비되는 대로 조그만 학교를 네 고향에 지어보겠다』
부모님은 6ㆍ25 때 전사한 창록 형님의 연금을 내어 주시고 내게 육영사업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는 것이었다.
『내 평소에 자식의 연금을 축 낼 수 없어 그냥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제! 좀 더 보람 있는 일은 없을까 해서 말다. 근데 니가 이번 육영사업에 투자하겠다 하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노 자 꺼리지 말고 갖다 쓰거래이!』
어머니도 눈물을 글썽거리며 거드셨다.
『아마 니 형도 그 돈이 그런데 쓰이면 지하에서도 기뻐할 게다』
그날로 나는 소년과 약속한 충북 영동으로 갔다. 그리고는 곧 야산에 올라 이곳저곳 부지를 물색하는 중에 경찰관의 심문을 받게 되었다.
나는 서장 앞에 주민등록증과 제대증 그리고 얼마 전까지 의용촌에 있었다는 증명서를 내놓자 간첩이 아닌가 오인했다고 미안해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그곳 기관장들과 친숙하게 되어 학교 짓기에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얼마 후 이 고장의 교육 발전을 위해 무보수로 나선 송원봉씨와 나는 새로 입학한 50명의 학생과 함께 희망에 부풀었다. 교사 신축으로 고생도 모르고 대구를 내왕하며 보람을 키워가고 있을 때 잊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바로 이듬해 4월 1일 만우절이었다.「송원봉 선생 급사 급내」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엊그제 대구를 다녀간 송 선생이 아닌가. 그리고 오늘이 만우절이니 누군가 심한 장난을 하고 있나 보다고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쩐지 불길하다는 어머니 말씀대로 그것은 만우절의 한때 장난이 아니었다.
사흘만에 영동에 가 보니 신축 교사 부지는 울음 바다가 되었다.
나는 실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힘을 찾게 해 주어야 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보수를 주고 선생님을 모셔 와야 했다. 먼 외지로 떠나지 않고 고향을 지키면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는 야생꿩을 몇 마리 잡았다.
이것을 부업으로 하여 학비를 마련할 수는 없을까…그날부터 꿩 기르는 집념의 나날이 시작되었다.
어느날 아침 아내가 소리 치며 달려왔다.
『여보 꿩이 닭의 품 속에서 깨어났어요. 일곱 마리요. 드디어 깨어났어요』
나는 일곱 마리를 일곱 개의 우리에 각각 다른 조건으로 넣었다. 갖가지 실험을 거쳐 꿩의 생태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꿩 기르기-그것은 나와 같은 신체적 조건을 가진 사람에게는 최적의 사업이었다. 4년이 지나자 꿩 사육을 체계화한 책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꿩은 삼백 마리가 되었고 각처에 수없이 알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환우들이 있는 육군병원에서는 여간 반가와하는 게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대하면 꿩 기르기로 가슴 부푼 환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손자 보기를 원하셨지만 나는 그때마다『스트리커에 매달려 울던 생각 좀 하이소』하며 지금의 처지를 감사하게 생각하자고 말씀드린다.
『그렇데이 느그들…우리 꿩 새끼들이 모두 내 손주인기라』
나는 이 사업을 계속해서 한국 꿩을 수출 자원으로 키울 생각이다.
그리고 비둘기처럼 우리나라 어디서든지 꿩을 볼 수 있고 아름다운 그 울음 소리가 메아리칠 날을 꿈꿔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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