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날 부터 이 환자는 매일 미사 참례를 하고 만과에도 참석을 했다.
가끔 교리반에도 듣는 둥 마는 둥 앉아 있었다. 그러나 망칙스러운 행동은 여전히 계속했다. 그녀는 꼭 미사 중 거양성체 부분만 되면 슬그머니일어나서 옷을 훌훌 벗고 팬츠 바람으로『히히히…』하고 큰 소리로 웃어대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성당 안은 또 한바탕 큰 소동이 일어나곤 했다. 미사를 집전하시는 신부님도 안색이 붉었다 푸르렀다 억지로 참으시면서 미사를 드리신다. 여회장님이랑 여교우들은 죄송스러워서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재빨리 그녀를 붙들어 앉힌 후 옷을 도로 주워 입힌다. 이렇게 그녀의 행동이 매번 미사 때마다 계속되기 때문에 그녀 옆에는 항상 억센 여교우 몇 사람들이 앉아 있어야 했다.
또한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나중에는 그녀는 내가 미혼이라는 것을 알자『총각 선생님 히히히…』하고 내게까지 수작을 걸어 왔었다. 나는 존엄한 얼굴로『아주머니 성당에 와서는 조심을 하셔야 합니다』라고 부드럽게 그녀를 타일렀다. 그러나그녀는 계속『총각 선생님 히히…』『총각 선생님 히히…』하고 연방 내 곁으로 다가와서 눈웃음을 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만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버렸다.
그 후 어느날 저녁 만과 후였다. 당시 내가 거처하던 처소는 성당 뒤의 외딴 곳이어서 사제관과는 좀 떨어져 있었다. 주일미사 후나 저녁 만과 후에는 매일 같이 교회 청년들이 몰려와서 교리 이야기랑 바둑ㆍ장기 두기 화투놀이들을 하며 밤샘을 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날은 비가 조금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나는 일찍 기도를 바치고 돌아와서 오늘 학교 강의시간에서 배운 전공 서적을 펼쳐들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그녀가 나타나서『총각 선생님, 히 히…』하며 방 안으로 들어올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겁이 나서라기보다는 혹시 교우들로부터 오해를 받을까봐 두려워서였다. 그렇지 않아도 중학생들이나 교리반 아이들은 나만 보면『총각 선생님 히히…』하고 그녀의 흉내를 내며 나를 놀려 대고 있었는데….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는『아주머니 밤이 늦었으니 빨리 돌아가십시요』그러나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뿐만 아니라 노골적으로 내게 덤벼들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나는 할 수 없이 맨발로 방문을 뛰쳐나가 만과 후에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교우 청년들을 데리고 왔다. 물론 전교회장으로서 환자를 잘 타일러 보내지 못한 것이 좀 부끄러웠다. 그러나 어디 남녀 사이가 그런가? 더구나 정신병 환자인데….
나는 그날 밤 혼자 잠자리에 들 수가 없어서 교우 청년들과 함께 잤다.
잠자리에서도 줄곧 좀 전에 있었던 그녀의 행동이 눈 앞에 떠올라서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도깨비에 홀린 것 같기도 하고 이상야릇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대체 저 여자가 무엇 때문에 미쳤을까? 정말 귀신이 덮쳐서였을까? 아니면 정신착란으로? 아니면 말로만 듣던 상사병으로 미쳤을까?
그러나 이 큰 의문은 그 후 얼마 아니 가서 천주께서 낫게 해 주셨다.
그녀가 교회에 나온 지 그럭저럭 한 달이 넘었다. 마침 사순절이 반쯤 이상이 지나 고난주일이 되었다. 그동안 신자들은 천상의 공로를 많이 쌓기 위해서 희생과 극기 그리고 성로신공을 많이 바쳤다. 이 환자도 깨달을 수는 없지만 교우들을 따라서 부지런히 성로신공을 드렸다. 이 고난주일에 그녀의 병세는 갑자기 호전되었다.
성지주일부터는 깨끗이 병이 나아 새 사람이 되어 버렸다. 신부님이랑 모든 신자들은 정말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천주께서 섭리하신 것이 아닌가? 하고. 그 후 그녀는 열심히 교리를 배워 몇 달 후에는 성세까지 받았다. 이 소문이 차츰 널리 퍼져서 그녀의 시가에서까지 알게 되었다.
마침내 시가에서도 그녀를 다시 불러갔다. 그래서 지금은 자녀들을 몇씩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마침 내가 얼마 전에 그 성당에 들렀을 때 그녀도 친정에 왔던 참이라 나와 만났다.
우리들은 참으로 서로 반갑게 인사했다. 나는 그날 미사 중에『주여! 정말 감사합니다. 만약 그때 우리가 그녀를 교회에서 쫓아 버렸다면 우리는 큰 죄인이 될 뻔 했습니다. 오직 당신의 섭리하심이었습니다』라고 조용히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계속)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