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된 레지오 마리에는 그동안 눈부신 발전을 거듭, 1천차 주회합을 돌파한 쁘레시디움이 속출하고 있다.
성모께 대한 충성과 덕행과 용기로 굳게 뭉쳐 한국 교회의 복음화 聖業에 선봉 역을 맡아온 전국 각 교구의 1천차 주회합 돌파 쁘레시디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을 찾아 지금까지의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기로 한다. <편집자>
부산 서대신동본당「영원한 도움의 성모」쁘레시디움은 6ㆍ25의 상흔이 그대로 깔려 있던 1956년 1월 3일 부산교구에서는 가장 먼저 발족을 보았다.
당시 부산지역 사목을 담당하고 있던 메리놀회 소속 권요셉 신부가 55년 2월 1일 초량본당서 서대신동본당에 부임한 후 성당 신축과 더불어 본당 주보명을 딴 쁘레시디움을 조직한 것.
쁘레시디움은 40~50대의 남녀 18명이 모여 첫 회합을 가진 이래 지난해 3월 25일로 1천차의 주회를 기록했으며 금년 7월 4일로 1천50차를 기록하면서 20개 성상을 흘려 보냈다.
매주 1회씩의 회합으로 1천50회를 기록하기까지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세월 동안 부산 시내 전역에 이들 단원들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이 없으며 이들의 손을 거쳐 새로운 삶을 얻고 후회 없는 생을 살다 간 사람들의 수는 헤아릴 길이 없다.
지리적으로 바다를 낀 산비탈에 위치해 있는 서대신동은 전후 혼란이 계속 되던 때에 갈 곳 없는 난민들로 집단 판자촌을 이루었다.
바로 이 지역에 세워진 교회는 무엇보다 난민 구제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으며 레지오 단원들이 그 최선봉을 맡아야 했다.
요즘 같이 교통이 편지하지 못한 때라 하루 20~30리 길은 예사였다.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저녁 밥 숟갈 놓기가 무섭게 험한 길을 헤치고 물어 찾아가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그러나 단원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용기백배하여 뛰고 또 뛰었다. 끊일 줄 모르고 계속되는 구호 물자 싸움엔 밤 세워가며 설득작전을 폈으며 죽어가는 외인 소식을 들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려갔다.
그뿐 아니라 세례를 받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 형제들에게는 끊임없는 대화와 형제적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며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외인들에게는 같은 신앙인이 되자고 이끌었다.
이러기를 20년 -그동안 교우ㆍ아동ㆍ예비자 지도를 비롯 입교 개종 권면 환난자 위문 본당 협조 레지오 확장 강화 봉사활동 등 전체 1만7백70여건을 대상으로 1만2천2백80여회에 걸친 활동을 폈다.
그 결과 냉담자 5백75명을 대상으로 7백65회의 설득 끝에 1백24명을 회두시켰으며 1천9백회에 걸쳐 2천1백 명의 외인들에게 입교를 권면, 4백여 명이 영세 입교했다.
또한 1천7백여명의 교우ㆍ외인 환자ㆍ대세자와 사망자를 대상으로 1천9백여 회의 위문과 협조를 그리고 3천3백여 회에 걸쳐 3천5백여 신자 및 교우 자녀의 신앙생활을 지도했다.
이러한 활동의 이면에는 단원들이 겪어야 했던 고초와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이 있었다. 당시 이 지역에서 전교가 가장 힘들었던 곳은 태극도촌과 걸인 및 윤락녀 집단거주지역.
이곳에 활동 나간 단원들이 까닭 없이 집단 폭행을 당해 앓아 눕는가 하면 선량한 시민을 악의 소굴에서 구출키 위해 격투를 벌이는 등 위험도 따랐다.
이에 못지 않게 함께 활동하던 단원의 임종을 지켜볼 때는 한없는 슬픔도 참아야 했다.
이토록 힘겨운 고통과 뼈 저린 아픔도 위로와 격려를 나눌 수 있는 쁘레시디움이 있기에 견딜 수 있었다. 지금의 단장이며 창립 이듬해부터 줄곧 활동해 오고 있는 이상진(55ㆍ바오로)씨는 가장 괴로왔던 일이『단원 수가 줄어들어 두 번이나 쁘레시디움이 강제 해체될 뻔했던 때』라고 술회한다.
창단 당시 18명이던 단원들이 몇 해가 지나 타본당에 전출 혹은 사망으로 급격히 줄어들자 메리놀회 지도신부는 딴 본당에 통합하든지 아니면 해단을 명했다. 단원들은 결코 해단할 수 없다고 버티면서 58년 당시 꼬미씨움 단장이던 장병화 신부(현 주교ㆍ마산교구장)에게 이 사실을 문의했다.
『<단 한 사람이 남아도 해단해서는 안 된다>는 장 신부님의 말씀이 그토록 고마울 수가 없었다』고 이 단장은 그때의 감회를 되새겼다.
그래서 단원이 제일 적었을 때는 4명이어서 지도신부 없이 회합을 가졌다.
지금은 60~70대의 남녀 각 7명씩 14명으로 환난자 위문과 협조 및 혼배 지도를 중점적으로 펴 나가고 있다고 한다.
이 단장은『거의 대부분의 단원들이 활동은 1백% 했으나 보고나 기재 요령이 나빠 10%밖에 반영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 실은 개인 성화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단원들의 겸손이 활동 성과를 스스로 축소시키기 때문일 것 같다.
숱한 고난과 역경을 딛고 오늘이 있기까지 20년-이제「영원한 도움의 성모」쁘레시디움은 마리아 군단의 총수 성모 마리아의 지휘 아래 성년으로서의 앞날을 보다 알차게 꾸려나갈 것으로 크게 기대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