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역시 C성당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그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신ㆍ구교 간에 대화다 교회 일치다 하는 말이 없었고 더군다나 같은 장소에서 회합 같은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교회 재일치운동은 제2차「바티깐」공의회 후에 활발하게 일어난 운동이라 하겠다. 어느날 저녁에 우리들은 본당 신부님을 모시고 K동에서 교리 강연회를 가졌다. 당시 본당 신부님은 십 년 동안 이태리에 유학하셔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으신 분으로서 학문에 깊은 조예를 가지셨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에서는 좀 더 폭 넓은 포교활동을 위해서 매일 저녁마다 부락을 순회하면서 부락민들에게 교리 강연회를 열었다. 때는 모심기가 거의 끝난 초여름 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일찍 저녁식사를 마치고 강연회가 개최되는 교우 집으로 몰려들었다. 우리들이 그집에 당도하자 넓은 뜰에는 마을 사람들로 가뜩 메꾸어져 있었다. 그때는 전기불이 없었던 때였다. 뜰 한가운데에 메달아 놓은 호얏불이 흐릿하게 빛나고 석유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꼭 시골 장터의 가설극장이 연상되었다. 그러나 여기에 모여 있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꽤나 진지해 보였다. 그들은 박사 신부님이 오셔서 강연회를 한다니까 혹시나 어떤 좋은 유식한 이야기를 들려 주려는가 하고 잔뜩 기대가 컸었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그때 우리 본당의 신자들은 모두 학문에 조예가 깊으신 박사 신부님을 모시고 있는 것을 여간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서는 박사란 말만 들어도 엎드려 절 할 만큼 받드는 시대였다. (물래서 2시간 동안의 강연회가 끝나고 자유롭게 질문하고 토론하는 시간이 되자 여기저기서 제사문제에 관해서 질문을 던졌다. 천주교회에 다녀도 제사를 지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유교사상이 강한 중국이나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 제사문제가 윤리 행위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당시 우리 국민들 가운데는 성당에 나오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도 이 제사문제 때문에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신부님은 이 질문을 받자 혹시 자칫 잘못 얘기했다간 이 사람들에게 많은 실망을 안겨 줄까 걱정인 모양이었다. 잠시 후에 신부님은『제사는 지낼 수 있으나 부모님의 혼이 와서 직접 음복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만 조상을 추모하는 뜻으로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궁금해 하던 모든 사람들은 대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맨끝줄에 앉았던 청년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그것은 우상 숭배와 같은 짓이라고 맹렬하게 신부님의 말씀에 반박을 했다. 알고 보니 그는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열심한 개신교 가정의 자녀로서 아버지가 교회 집사이며 본인도 교회의 청년회 지도직을 맡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유명한 박사 신부님이 강연을 한다니까 호기심 겸 종교적으로 질투심 같은 것을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장 내는 갑자기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신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제사 지내는 것은 금지해야 하고 한 술 더 떠서 성상(聖像)문제까지 들고 나와 십자가 성모상 상본 등도 모두 우상 숭배의 짓이라고 주장했다.
처음에 신부님은 그 청년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듣도록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그 청년이 끝까지 우겨대자『그럼 국기나 부모님의 사진을 걸어 놓는 것도 금지해야 한단 말이요?』하고 내가 대들었다.『물론이지요』『흥, 그럼 국가나 부모도 없다는 말과 같군!』
기대했던 강연회가 이 모양이 되고 말았으니…. 부락민들은 우리들에게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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