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나의 꿈은 소방관 생활이었다. 요란한 사이렌 취명을 울리며 달리는 불자동차도 멋지려니와 불을 피해 창문에 매달린 사람이나 불길 속에 두고 나온 아기를 구하는 용감한 불사나이에 더할 수 없이 매료되었다고나 할까.
자라면서 더욱 소방 장비의 개발과 소방 행정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고 국비소방관 공개 채용 시험에 합격하여 근무를 시작하였다. 불조심 강조 기간을 맞은 겨울철은 우리 소방관들에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과가 계속되었다.
계몽 선전을 필두로 특수 소방 대상물의 정밀 방화 진단 소방용 수리시설의 점검과 직장자위 소방대원에 대한 소방훈련 등…그 중에서도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영하의 추위를 무릅쓰고 야간 방화 순찰에 나서는 일은 가장 고되다. 얼어붙은 소화전의 쇠뚜껑을 연탄불로 녹이는 작업을 하고 아직 불이 붙은 연탄재를 함부로 버리는 주부나 불장난하는 어린이들을 선도한다.
연말이 가까운 어느날. 나는 소방 검사차 담당구역인 Y동으로 갔다. 가장 비협조적인 S요정의 여사장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출발하기 전에 읽어둔 소방 검사부 내용을 중얼거리며 요정의 문을 열었다.
…연령 36세 목조 3층 연면적 250㎡ 수용 인원 90명 소방시설 포말 소화기 1대 소방시설 보완 지시 주방 개수 명령 및 구조 대비책 촉구 재강조함…
나는 천천히 홀 안을 두루 살폈다.
천정에 매달린 조명 등 거미줄처럼 엉킨 저질의 노교된 전선 커텐과 카펫 비좁은 계단과 눈에 띄지도 않는 비상구…정말 A급 화재 취약지구로 손색이 없었다.
나는 신분증을 제시했다.
『우리집은 불 난 데가 없습니다. 보시다시피.』
그녀는 양팔을 벌리고 주위를 휘둘러 보며 우쭐댔다.『그럴까요. 내가 보기엔 불 붙을 곳은 부인의 가슴 속에도 있습니다. 하하 농담입니다. 소방관 입장에서 볼 때 이 집은 불이 나지 않는 게 기적 같군요』여자는 어서 도장이나 찍어 가라는듯 인주를 내던졌다. 나는 무관심하게 등을 돌리는 여자가 듣건 말건 소방의 중요성에 대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어느 새인가 여자는 누그러져 있었고 모든 종업원들을 불러 함께 필기까지 하고 있었다. 드디어 그녀는 설득된 것이다.
나는 포말소화기 사용법에서부터 휴즈 대신 철사를 사용하고 있는 두꺼비집의 위험성과 노후된 전선에서 오는 누전도 설명했다. 후끈한 화덕 곁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천연스럽게 놓여진 프로판 가스통들…나는 유도등과 화재 탐지기 객실 안의 방영 처리해야 할 차광막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지도해 갔다.
『당신은 우리집에 오신 여늬 소방관 하곤 다르군요』
왁자지껄하고 손님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났다. 나는 천천히 층계를 내려와 요정의 문을 밀어냈다. 찬 바람이 싸늘했지만 경쾌하고 흐뭇했다.
그날 이후 전임자들의 입에 그처럼 오르내리던 말썽 많은 S요정의 여사장은 소방사업에 가장 협조적인 주민이 되어 있었다.
망루 근무-연탄 한 개를 새끼줄에 꿰어들고 언덕배기에 솟은 목조 망루로 향한다. 차량 통과가 어려워 근무자가 한 장씩 들고 가기로 한 것이다. 안면 있는 연인네가 걸어오다 웃는다.『어마 잘 어울리시네요』『애국자가 누군지 아오? 바로 납니다. 허허』
영하 30도의 혹한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지난 두 밤을 화재 출동해서 한 잠도 못 잤기 때문에 일찍감치 대기실에 가 눈을 붙인다. 창문 틈위치에 높다랗게 달아 놓은 빨간 비상벨을 힐끗 쳐다보고는 작업복을 입은 채 귀 밑까지 이불을 뒤집어 쓴다.
바람이 흙모래를 유리창에 휘뿌리고 반자 안에서는 쥐들이 찍찍댔다.
전후반 교대시간을 30분 남긴 밤 12시30분 찌르릉 벨소리가 방 안을 진동했다. 나는 꿈과 연결되어「출동이닷」외치며 차고를 향해 뛰었다. 화재 접보에서 출동까지 45초. 지휘관은 고압 펌푸차에 오르며『G시장 화재』를 외쳤다. 신호등을 빙글빙글 회전시키며 소방차가 질주한다. 영하 27도 초당 풍속 10m 매운 바람이 볼을 갈기고 있었다.
차가 로터리를 돌아서자 벌써 화광이 충천했다. 발화 장소는 연립상가 지대에 있는 페인트사였다. 나는 관창 노즐을 움켜잡고 돌진한다. 문을 부숴라 !연소 방지에 주력하자 2착대 3착대 주수부서는 수막 협공을 개시하자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점포 안에 사람이 있오. 사람 사람 살려요! 아래 층 바로 계단 옆이오!』나는 관창의 손잡이를 돌려 물줄기를 산수로 줄이고 점포 바닥에 엎드린 채 회중 전등으로 사방을 비췄다.폭사열이 훅하고 몸 전체가 달기 시작한다.
관창을 수직으로 천정을 쏘아 떨어진 물로 온 몸을 적신 후 다시 계단을 기어오른다. 학생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뿐이다. 마루 전체가 흔들리고 화염이 치솟기 시작했다. -이제 죽는구나, 외롭게 불을 쳐부수는 사나이…정신이 몽롱해진다.
무언가 틀림없이 보였다. 나는 힘차게 관창의 물을 뽐아 달려갔다. 옥상으로 통하는 문 앞에 문고리를 움켜 쥔 채 쓰러진 사람-나는 재빨리 들쳐 업고 불타고 있는 계단을 통해 그을리고 비틀거리며 겨우 옥상으로 빠져나온다. 터지는 함성 앰불란스가 달려온다.
『용케 구했구먼』
『자식, 소방수값 하는데』
나와 환자는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다.
생명을 구했다는 자부심에 가슴이 부풀고 더없는 보람을 느낀다.
그 후 나는 경찰국 소방과로 발령을 받았다. 대기실에 잠든 동료들의 정답고 젊은 얼굴들을 바라보다 차고로 들어간다. 고압 펌프차와 물탱크차 방송용 찦차가 잘 닦여진 채 윤이 반짝인다.
나는 소방차를 어루만진다. 얼마나 좋아했던 불자동차인가…가지런히 포개진 소방 호스 그 끝에 붙은 관창! 나도 일급 관청수였는데…어느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시시각각으로 불의 도전을 받는 소방인들, 남들처럼 즐거운 휴가도 화목한 가정도 가질 수 없는 소방인들이다. 이처럼 방심 없는 나날 속에 젊음을 불 속에 묻어버린 우리 소방인들 묵묵히 불과 싸우노라면 보람은 우리를 찾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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