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측 기록에 치백이란 이름으로 나올 뿐 그 밖에는 늘 군집이란 이름으로 불렸었다.
군집은 서울 마포 강변에 거처하면서 강로를 통해 지방에서 들어오는 산물을 사고 팔고 함으로써 꽤 유복하게 살고 있었다. 부인과 자녀들이 천주교를 믿고 있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도 군집은 식구들이 자유롭게 또한 열심히 믿게 내버려 두었을 뿐만 아니라 밖으로부터의 감시를 막기 위하여 강변 포졸의 구실을 자원하기까지 하였다.
한편 군집 스스로는 식구들에게『나는 이 다음에 믿겠다』고 하며 개종을 미루었고 늘『만일 박해가 일어나면 나 개인이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아내와 자식들이 참 불쌍하다』고 말하곤 했다. 군집은 또한 교우들을 만나기를 좋아하였고 그들을 언제나 특별히 대접하였다. 모든 이로부터 아주 정직하다는 평을 들었고 그의 언동은 교우들과 비교하여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1846년 봄에 아들 성실이 선주의 자격으로 김대건 신부를 황해 바다까지 동행하였다가 김 신부가 잡힘에 따라 그도 붙잡히게 되었다.
아들의 체포 사실을 알게 되자 군집은『나는 그곳 군수를 잘 안다. 그러니 가서 아들과 다른 이들의 석방을 청하겠다』이렇게 아들을 쉽게 석방시킬 것을 기약하고 즉시 순위도로 떠났다.
하지만 아들을 석방시키기는 커녕 자신도 붙잡히게 되었다.
서울의 포졸들은 마포의 그의 집을 습격하고 남은 식구들을 붙잡아 가는 동시에 집과 가산을 완전히 몰수하였다.
군집의 아내와 딸만은 요행히 피신하는 데 성공하였다.
천주교를 믿느냐는 황해 감사의 질문에 군집은 서슴없이『비록 오늘까지 실천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어찌 천주를 공경하고 섬길 마음이 없었겠습니까』라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소위 사학 죄인 취급을 받고 서울로 압송되었다는 것이다.
군집은 좌포도청에서 김 신부를 만나뵐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즉시 감동이 되어 군집이 김 신부에게『오늘부터 저는 천주교를 믿겠습니다』고 교우가 될 결심을 밝혔다. 이어 김 신부로부터 경문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며칠 후에는 감옥에서 김 신부로부터 직접 성세성사를 받고 요셉이라는 본명을 얻었다.
전에 친하게 지내던 포졸들이 찾아와서 교활한 말로써 그의 배교를 시도해 보았으나 요셉은『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기로 결심하였으니 그런 말은 더 이상 하지 말게』하며 그들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쳤다.
옥에 갇힌 지 석 달이 지난 어느날 판관이 요셉을 불러내어 법정에 꿇어 앉히고 이렇게 문초하였다.
『네가 천주학을 한다는 말이 사실이냐』『그렇습니다. 옥에 갇힌 뒤로부터 경문을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천주십계를 외워 보아라』『아직은 다 외지 못합니다』『천주십계도 모르면서 어떻게 천당엘 갈 수 있단 말이냐』『천당에 가기 위하여 여기 있는 이마지아(이승훈의 아들)처럼 유식해야 합니까. 그러면 자신이 유식하지 않고서는 부모에게 효도를 할 수 없단 말입니까. 무식한 자식들도 다른 자식들과 마찬가지로 부모에 대하여 모든 본분을 다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는 비록 무식할지라도 천주가 나의 아버지 되심은 잘 알고 있고 또한 그것으로 족합니다』『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두어라』
만일 네가 배교하면 살려줄 것이고 그렇지않으면 죽이겠다』『매번 죽는 한이 있어도 배주할 수는 없습니다』『너는 이번 사건에 전혀 연류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도 어째서 꼭 죽으려고만 하는가. 참 이상하구나. 배교하기가 싫으면 여기서 나감으로 네 두 아들을 석방시키고 싶다는 한마디 말만 하여라』『나는 신부님과 함께 죽기로 약속하였습니다』『신부와 같이 죽기로 했다고 그렇지만 신부는 죽지 않을 것이다. 도리어 정부는 그에게 벼슬을 줄 생각이다. 그래도 너 혼자서 죽고 싶단 말이냐』『신부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말은 지금 당신이 하시는 말과 같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때 판관이 요셉에게 고문하기를 명했다. 때리고 주리를 틀었다. 요셉이 신음하는 소리를 내자 포졸이『이렇게 신음하는 소리를 내면 그것으로써 배교의 표시로 간주하겠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요셉은『배교의 표라고, 사람은 영혼과 육신이 서로 긴밀히 결합되어 있어서 고통이 있으면 자연 신음 소리를 내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결코 배교하지 않겠다』고 대답하였고 사실 그 후로는 어떠한 고문을 받을지라도 조그마한 신음 소리도 밖에 내지 않았다.
남경문이가 상처 투성이가 되어 옥으로 끌러들어오는 것을 보고 요셉이는 일어나 가까이 가서 그를 위로하고 그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뿐더러 남경문이 치질로 고생하는 것을 알고 그의 병을 돌보아 주었다. 이렇게 요셉은 남경문을 위로하고 또 그의 위로를 받았다. 요셉은 그 후에도 치도곤을 수없이 받았다. 치도곤 50대를 맞고 선종하였다는 말도 있으나 그보다 더 확실한 것은 치도곤을 수없이 맞았으나 죽지 않으므로 결국 목을 졸라 죽였다는 것이다. 요셉이 큰 소리로『오 주여 내 영혼을 당신 손에 맡깁니다』하고 숨을 거두니 그때 그의 나이 43세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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