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관련되지 않는 병이나 혹은 자궁 외의 임신으로 인하여 위독한 어머니가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치료나 수술로 태아의 희생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긴급조치는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경우일지라도 태아를 고의로 죽인다면 언제든지 살인죄입니다. 루프를 사용하는 것도 피임행위가 아니라 이미 잉태된 태아를 자궁 속에서 살지 못하게 하는 행위이므로 이것도 살인죄입니다. (Ⅲ)부부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또한 하느님의 목적과 하느님이 세우신 자연법을 지켜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생활을 허락하시고 강복하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자녀를 낳고 기르고 보호하며 양육시키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혼인생활의 또 하나의 중대한 목적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을 조장하며 성취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높은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부부들에게 한 몸과 같이 일치하라고 하셨으니 이 일치하는 부부행위와 이에 따르는 쾌락도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신성하게 향유할 것입니다. 성의 쾌락은 독립적 목적이기보다 위의 두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입니다.
부부들이 쾌락을 위해서 성행위를 하는 것은 죄라고 할 수 없으나 하느님의 목적(즉 자녀의 출생과 부부의 사랑) 중에 하나라도 적극적으로 거절하거나 무효화한다면 이는 하느님의 뜻을 어기는 일인 만큼 죄악이라 판단하여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 미워하면서 서로에 대한 미움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랑의 행위를 이용할 것 같으면(예컨데 남편이 부인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강간한다면) 누구나 이 행위를 모순된 일이며 더러운 것이라 판단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녀를 번식하기 위한 행위를 일부러 태어나지 못하도록 헛되게 하는 것은 자연을 어기는 행위입니다. 자연적으로 수태치 못할 때에 부부행위를 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때 수정치 못하는 결과는 자연의 창조주께서 결정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자연을 어기면서 인공적으로 부부행위 그 자체를 손상시키거나 그 자연적인 결과를 미리 방지하거나 막아 낸다면 죄라고 판단하여야 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여러 가지 피임 방법을 고찰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①루프를 사용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피임 방법이 아니라 잉태된 태아를 자궁 속에서 살지 못하게 하는 행위이므로 살인행위입니다.
②콘돔을 쓰는 것과 질 외에 사정하는 것은 부부행위 그 자체를 훼손시키는 행위입니다.
③불임수술이나 불임약은 부부행위의 자연적인 결과를 미리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④가로막이나 다른 여러 가지 인공적인 방법은 성행위의 결과를 비자연적으로 막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러 가지 비자연적인 피임 방법은 하느님의 자연법칙을 어기는 것입니다.그리고 생리적으로 볼 때에도 비자연적인 피임에 따르는허다한 부작용도 있습니다.
자녀를 낳지 말아야 할 타당한 사유가 있을 때에 주기법에 따라 한동안 금욕생활을 하는 것은 하느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는 부부행위 그 자체를 손상시키는 것도 아니고 인공적으로 그 자연적인 결과를 미리 방지하거나 막아내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태치 못하는 기간에 부부행위를 하는 것도 죄가 아니며 잉태될 수 있는 기간에 성행위를 안 하는 것도 죄는 아닙니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자연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연을 지키는 것이고 하느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고 그 법을 지키기 위해서 그만큼 욕정을 억제하므로 하느님의 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전에는 주기법을 이행하는 데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꾸준한 연구와 실험 결과로 이제는 주기법의 여러 가지 문제점은 거의 해결되었습니다. 약 15년 전에 또 하나의 자연적인 피임 방법을 개발하게 되었는데 이는 배란법 혹은 점액관찰법이라고 합니다. 이 방법은 자연적인 것인 만큼 하느님의 법을 어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방법은 이해하기도 쉽고 비교적 실행하기도 쉽습니다. 배란 방법을 15년 동안 여러 나라에서 실험해본 결과 큰 성공을 이룬 사실이 있고, 우리한국에서도 4년 동안 수천 쌍의 부부들이 실시했는데 생리적인 실패가 거의 없습니다. (계속)
1976년 6월 25일 천주교 한국 주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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