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회의 원로인 현석호선생의 자서전적 문집인「한 삶의 고백」이 출간되었다.
저자의 8순 기념을 겸해 간행된 책이다. 누구나 노경에 이르기까지의 한 삶을 돌아보면 나름의 우여곡절이나 파란만장이 있고 절실한 감회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석호선생의 이번 책에 실린 그의 일대기는 독특하게 박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어린 소년시절에 경상도 시골에서 한문만 공부하다가 늦게 16세에 국민학교에 입학한 저자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까지 진학한다. 그는 재학 중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첫 번째 경우로 각광을 받고, 졸업 후 고급 관리로 진출한다. 관직 생활년에는 중국 북경에 가서 6중간 근무한 일도 있다.
해방 후 그는 제3대 국회의원으로 시작해 정계에 진출했고 제2공화국의 국방부장관 재직 중에 5·16 군사쿠데타를 당했다. 5월16일 새벽에 급전직하로 추락한 자신의 처지에 대해 저자는 이 책속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국방부장관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바깥출입 때에는 헌병들이 호위하고 다녔다. 그런데 지금은 그 헌병들에게 끌려서 이곳에 왔고, 또 그들의 엄중한 감시 하에 수감되어 있으니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뼈 아프게 느꼈다』
저자는 자신이 살아온 세월동안 자신의 능력을 믿었고, 남들도 믿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믿지 못하게 된 극한상황에서 <하느님>밖에 믿을 것이 없다는 차원으로 옮겨 간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현석호 선생의 신앙생활은 줄기차게 독실하기만하다. 그는 한국 민주주의의 결정적 퇴보가 자신의 책임임을 참회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이 참패의 덕으로 하느님의 진리 안에 살게 된 것을 무한히 감사하고 있다. 가톨릭에 입교한 이후 그는 특히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의거하면서「교리연구소」「평협」「꾸르실료」「MBW」「가톨릭문화연구원」등 신자사회의 주요 사도직활동들을 개척하고 정착 시키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원래 청년시절에「논어」를, 장년시절에「채근담」을 지혜의 거점으로 삼은바 있는 저자가 노년시절을「성서」에 전적으로 의탁하고 있는 점도 이채롭다. 정치와 신앙에 편력하는 자전적 술회외에 책 끝 부분의수필들 또 여유와 위트에 넘치는 문예적 문장의 수준을 과시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 있어 이 책을 옆에 가까이 둠으로써 삶과 신앙과 교양에 있어 값진 모범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탐구당 발행 국판 468면 값 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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