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부는 어느날, 나는 처참한 모습으로 부산역 전 공터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가던 순경의 도움으로 간신히 구호병원을 찾아가서면서도 내 머리 속에는 오로지 기계에 대한 일념뿐이었습니다.『내가 만든 기계 내가 만든 장난감이 손으로 직접 설계하고 두들겨 만든 오락시설 어린의 꿈을 마음껏 펴게 할 수 있는 저 기계 기계들 내 꿈은 반드시 실현될 것이다. 디즈니랜드 부러울 것이 없는 과학관이 있고 휴게실이 있는 이 땅의 어린이들 천국을 위해 나는 신나게 돌아가는 기계를 만들어야 한다.』
억세게 퍼붓는 비를 흠뻑 맞으면서 나는 구호병원의 창문을 두드렸습니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나를 향해 수녀님이 다가오면서 서류를 갖춰 오라고 손짓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정이 워낙 급한 저는 고물상에서 구한 묵주를 보이며 애원을 했습니다.『아니? 언제 영세를 받으셨습니까?』『아직 영세 못 받았습니다. 너무도 외로워서 그저 이 묵주로 기도를 드리곤 하지요. 비록 육신은 병들고 썩어가지만 영혼만이라도 살고 싶습니다.』드디어 수녀님의 도움으로 나는「마리아회 행려환자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비로소 나는 마음의 안정을 얻고 삼십에 이르기까지의 저의 삶의 행적을 조용히 되돌아볼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 것입니다.
왜 나는 귀머거리가 되었는가? 왜 피를 토하고 거리에 쓰러져야만 했는가? 어디서 어떻게 자랐으며 아직도 꿈을 버리지 못하고 방황하는가?
칠 년 전 나는 훈장 대신에 가슴 속에 공등을 달고 서글픈 제대를 해야만 했습니다. 더구나 폐결핵 중증의 환자인 나는 약물의 부작용으로 귀까지 멀어 있었습니다. 고향인 울산에 돌아와보니 술주정으로 세월을 보내던 아버지는 가산을 날리고 외진 바닷가로 이사를 가시고 이제 겨우 열여섯인 나 어린 동생 홍수가 구멍가게를 벌여 연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절망하고 있는 형을 위로한답시고 나의 착한 아우 홍수는 남의 담배가게에 담배를 훔치려다가 소년원으로 붙들려 가고 말았습니다. 나는 눈 앞이 캄캄했었습니다. 아우에게 속죄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대로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병든 몸으로 막노동판을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일을 했습니다.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후 뜻 밖에도 가장 친한 친구인 태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는 자기는 죽어가면서도 내게는 결코 용기를 잃지 말고 굳세게 살라는 눈물 겨운 유언을 남겼습니다.
학교 다닐 때 언제나 맨 뒤에서 씩씩하게 웃던 축구 선수 태진이. 문학이다, 예술이다, 열에 떠서 돌아다니던 나의 친구 태진이 그의 부탁대로 나는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아 헤매며 좌절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입니다.
마침 독지가의 안내로 재건학교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열심히 등사판을 돌려 학생 모집 광고를 주전의 마을에 돌렸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주정뱅이 장씨 아들 폐병쟁이에다 옛날의 이른바 깡패에게 아이들을 보내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태권도 유단자로 힘 깨나 쓰는 청년으로 알려진 것이 잘못 소문이 났던 것입니다.
자포자기한 나는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대로 형편없는 인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술을 마시고 오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술값을 요구하고 행패도 부렸습니다. 무질서한 나의 방탕생활..…나는 교통사고를 일으켜 6개월의 병상생활을 했습니다. 내게는 어느 곳에서도 구원의 빛은 없었습니다.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으신 아버지가 오셔서 폐인이 된 나를 붙들고 애통해하셨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미웠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병원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소년원을 나와 풀빵 장수를 하고 있는 동생 홍수를 만났습니다. 동생과 함께 풀빵을 구워 어린이들에게 팔면서 장남감도 팔게 되었습니다. 어느 때는 내가 직접 고치고 뜯어 맞추고 새로 개발한 물건들을 놓고 팔기도 했습니다.『하하 형님은 참 멋진 발명가요 과학자 아닙니까? 이것 보세요 이 장난감 참 희한합니다』『홍수야 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장난감을 다루다 보니 어린이들의 꿈을 키울 수 있는 과학적인 오락 기계를 만들고 싶구나 』『좋습니다. 장사는 지가 해서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으니 형님은 연구에 전념을 하시구요. 그래서 한국의 월트 디즈니가 되는 거예요 형님』홍수는 유원지에서 김밥 장수 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장사를 하면서 허약해 빠진 저를 돌봐 주었습니다.
나는 홍수를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내 몸이 완쾌될 때까지 요양원에 있으면서 발명품을 연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우의 곁을 떠난 나는 조개껍질로 꾸민 사진을 비닐 책표지 등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어 팔면서 서울로 와서 시립갱생원에 수용되었습니다. 어느날 삼촌이 찾아오셔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과 함께 청계천변에 방을 하나 얻어 주셨습니다. 나는 자취를 하면서 본격적인 기계 조립에 착수했습니다. 드디어 초라하나마 유원지나 놀이터에서 움직일 수 있는 기계가 완성되었습니다.
저는 붙드는 아우를 뿌리치고 떠났습니다. 전처럼 손재주껏 물건을 만들어 팔아서 입에 풀칠을 하며 몸 쉴 곳을 찾아 부산까지 왔습니다.
그러다가 허기지고 기진하여 역전에 쓰러졌고 마침내 구호병원의 수녀님의 덕으로 이곳에 온 것입니다.
저의 마음은 비로소 평화와 안정을 얻었습니다. 저의 몸은 비록 고달프고 저의 육신의 병은 이미 다시 재생할 능력을 잃었으나 저의 영혼은 생기가 있고 저의 머리는 명석합니다.
저는 계속하여 어린의 꿈을 키울 수 있는 기계를 설계하고 발명하는 데 남은 힘을 다할 것입니다. 그리고 특허권이라도 얻어서 착한 나의 아우, 그리고 어린 누이와 동생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보람이겠습니까. 이러한 꿈이 있기에 저는 기쁠 수 있습니다.
천주여 저에게 지혜를 주소서. 지혜를 찾는 자는 지혜를 발견하리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불쌍한 저의 동생들에게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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