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는 왜 자갈뿐이니?
형화는 발전소댐 밑에 바닥을 드러낸 넓다란 자갈밭을 내려다보며 기식이에게 물었다.
-그렇찮으면?
-한강엔 모래뿐인데 여긴 왜 자갈뿐이냐는 말이다.
청평댐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에는 그렇다고 어지간히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기가 한강 상류라는 걸 모르고 묻는 거야?
그러더니 기식이는 저 자갈들이 흘러가다가 저희들끼리 부딛치고 처박히면서 조금씩 부서져서 서울 근방쯤에 가서는 그렇게 조그만 모래로 변하는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저 자갈들은 또 어디서 오는지 아니? 산에서 떨어져 내려온 바위들이 부서져서 그렇게 동그랗게 갈고 닦여진 거야. 강으로 떠내려간 모래는 또 바다로 가서 진흙이 되어 갯벌을 만들지. 그건 참 옳은 말이었다.
이 정도쯤의 상식이야 형화가 벌써 국민학교 때 자연시간에 배운 것이었지만、이런 상식적인 현상이 전혀 생소할 일이었다는 듯 매우 새롭게 상기되어오는 것이었다.
맞았어. 인천 앞바다에 갯벌이 많은 이유가 꼭 그럴 꺼야 간만의 차가 심하니까 갈고 닦이다 못해 모래는 커녕 질흙 구덩이가 된 거지 그랬더니 기식이는 무척 신이 나서 그래 제자를 두려면 꼭 너 같은 애를 두어야지 가르치는 보람이 있지라고 응수해서 둘이는 픽픽 웃었다.
그래서 모처럼의 해방된 휴일 한적하게 뚫린 청평 아스팔트길을 손 잡고 걸으며 형화와 기식이는 물질의 변형에 관한 인식과 그 형태가 변해도 물질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기식이의 자상함과 평화로움은 어려서부터 한결같은 것이었다.
-수증기에 관해서 생각해본 적 있어?
-어떻게?
-물은 결코 물이라는 것 말이야. 바다에서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가지. 하늘로 올라간 수증기는 구름이 되고 구름은 무거워지면 다시 비가 되어 온 세상에 뿌려진단 말이야. 그럼 물은 산장들을 흘러내려서 냇물을 이루고 냇물이 더 모이면 강물이 되지. 강물이 계속 흘러와서 바다로 모이면 바다는 수증기를 증발시키고 수증기는 다시 구름과 비를 만든다는 것 생각한 적 있느냐는 거야.
피、누가 일자무식쟁이인 줄 아니、형화는 익살스럽게 기식이게 비웃음을 던졌다.
-아냐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라도 이건 매우 중대한 사건이야.
청평에서의 휴일은 서울 어느 곳에서 기식이와 만났던 것과 별 다름이 없었다.
그네들은 다만 좀 더 멀리 달리는 시외버스를 탄 것뿐 설레임도 기대도 없이 소꼽친구답게 정답게 손을 잡고 다녀왔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 퍼부은 초여름의 소낙비는 밤새 천둥과 번개를 동반했고 오늘 아침엔 맑게 개인 것이다.
형화는 어젯밤의 폭우를 생각하다가 청평댐 시멘트 벽에 펑젖었던 물기와 아침에 햇빛에 반사되어 흐르던 한강 물을 문득 기억했다.
비는 청평댐을 넘쳐 흘러서 지금쯤 어디에 도달했을까?
아침에 지나왔던 한강물은 어젯밤 한강 상류에서 출발한 물줄기일까?
형화는 기식이가 하던 말을 섬뜩한 기분으로 되삭이지 않을 수 없음을 알았다.
(물은 결코 물이라는 것 말이야)
그리고 형화는 한 가지를 더 기억해야 했다.
(이건 매우 중대한 사건이라구)
수증기가 비고、비가 바다라구 그리고 물이 결코 물이라면 오늘 한강 다리 밑을 흐르던 물이나 하늘에 둥실 떠 있던 구름이나 결국 물에 불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썩은 물을 퍼다가 집을 지었다고요?
형화는 상무와 운전기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글쎄 그렇다니까. 저 평화동에 아파트 짓는다고 파 놓다가 중단한 곳 있잖아 거기에 꽤 물이 고였길래 인부들을 시켜서 날라왔지. 거 썩은 물을 물값 내놓으라는 데는 정말 터무니 없더군.
-모래 값도 요즘 부쩍 올랐다던데 어땠습니까、상무님.
-얼마 전에 한강 물웅덩이에서 어린애들이 수영하다 익사한 적 있지 않나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모래 채취가 규제되더니 엄청나게 값이 오르더군.
-어마、모래도 사 오는 건가요?
최 상무는 신문을 읽다 말고 형화를 흘낏 쳐다보더니 헛허 하고 웃는 것이다.
-모래야 그냥 흘러내려오는 건데 누가 누구에게 사고 판다는 말씀이세요.
형화가 의아해져서 물었지만 두 남자는 여자가 뭐 그런 건 알아서 무엇 하겠느냐는 표정으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형화는 다시 한 번 기식이를 생각했다.
(물은 물이야)
그렇다면 돌은 돌이고 돌은 모래일 뿐일 텐데.
-사옥이 완공되면 건물 전체를 저희 회사에서 쓰게 되는 겁니까?
-대강 삼분의 일 정도는 임대를 할 계획이더구만. 일 층에 은행 정도 들어설 테고 사오 층 정도까진 내놓겠지.
그건 그렇고、차가 왜 또 안 빠지는가? 으흠、소리를 내며 최 상무는 창문 밖을 내다본다.
차는 어느새 서울역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를 정면으로 보면서 많은 차들 속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그렇게 성가신 사고는 아닐 것입니다. 신호대로 빠지기 시작하면 이삼 분 내에 회사에 닿을 것입니다.
시계 바늘은 거의 가까이 아홉 시를 향해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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