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 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주었다』(마태 25장 35절-36절)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따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평신도들의 소박한 삶은 무슨 일에나 곧잘 실망하고 어려움을 느끼곤 하는 나의 전교생활을 반성하고 되돌아보게 해주는 깨끗한 거울이었다.
어렵고 고달팠지만 한편으론 많은 성장과 보람을 준 첩첩산골에서의 전교활동을 떠나 어느 조그만 도시의 본당에서 전교수녀로 있을 때였다. 연탄 배달을 하며 여섯 명의 식구가 몹시도 가난하게 사는 한 가정이 있었다.
읍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산골짜기에 흙으로 토담을 쌓고 겨우 비바람을 면하고 사는 그들의 생활은 한마디로 비참한 그것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끌어가던 그 가정의 어머니가 갑작스러운 병(병명은 기억에 없다)으로 밤낮 없이 고통을 당하던 끝에 남편은 새벽 일찍 성당을 찾아왔다. 기도를 해달라고. 물론 그 가정은 신자 가정이었지만 오랫동안 교회를 등졌던 냉담가정이었다.
길도 멀었을 뿐 아니라 주일 헌금 바칠 돈이 없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 바빴던 것이 냉담의 이유였다. 부인의 고통을 보다 못해 새벽 같이 달려온 남편을 앞에 세우고 레지오 단원 몇 명과 함께 그 집을 방문했다. 집은 우리 일행이 모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비좁아 일부는 마당에 선 채로 우선 기도를 바쳤다.
급한 대로 거둔 우리의 조그만 정성과 마음을 모은 오랜 시간 동안의 기도로 그 가정을 위로하고 돌아서 나온 우리는 더 많은 도움(경제적)을 줄 수 없었던 처지를 안타까와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기도가 간절했던지 아니면 다시 하느님을 찾은 그 가정의 신앙 때문이었는지 며칠이 지난 후 움직이지도 못하던 그 부인은 13살짜리 장남의 부축을 받으며 교회에 나왔다. 가난을 이유로 몇 년 동안 교회를 외면했던 지난날을 뉘우치며 고백성사를 받고 미사에 참여한 그 부인은 모두가 꺼리는 누추한 집에 스스럼없이 찾아와 정성어린 기도와 따뜻한 격려를 해준 수녀님과 교우들의 형제애에 감사한다는 인사를 몇 번이고 거듭했다.
절박한 삶의 현실 속에서 친지나 이웃의 따뜻한 정을 느끼지 못하던 그들의 건조하고 메마른 생활은 우리가 베푼 아주 미소한 형제애에 커다란 용기를 얻었음이 틀림없다.
우리가 나눈 조그만 사랑으로 절망 속에 빠져 있던 한 가정을 가난하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굳세게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의 가정으로 탈바꿈시킨 사실은 주변의 불우 이웃들에 소홀히 했던 우리들의 전교활동에 많은 반성의 기회를 주었다. 뿐만 아니라 신앙을 되찾은 이들의 밝은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의 위대성을 재확인할 수 있는 무한한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이렇게 작은 도시에서의 전교생활은 깊은 산골짜기에 묻혀 있는 마을에서의 전교생활보다는 확실히 순조롭고 수월했다. 우선 수도자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이 없다고 스스로 찾아오는 적극적인 생활 태도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얕은 지식과 생활 경험은 오히려 소박하고 무식했던 산골 사람들에 비해 말씀을 전하고 신앙을 심어주는 데 큰 장애가 되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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