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로 광장을 이룬 서울역 앞 동네에는 아직도 하수구로 빠져들지 못한 물들이 땅 속에 스며들지도 못하니까 웅덩이라도 이루고 있다.
차들은 염천교와 남대문에서 서울역으로 빠지면서、그리고 형화네들처럼 시청 앞으로 진입하려고 정지해 있거나 아니면 달려가기 때문에 삼거리 한가운데는 수없이 튀어오르는 물줄기로 때 아닌 물난리를 치룬다.
치르륵.
어느 못된 운전사인지 규정된 차선에서 어긋나 옆길로 빠져서 차를 몰아대는 바람에 차바퀴 아래서 솟아오르는 흙탕물이 형화네 차창에서 얼룩져 흘러내렸다.
그러나 재수 없게도 저 멀리서 세워져 있는 순찰차에서 교통 순경이 뛰어나왔으므로 그 차는 틀림없이 빨간 딱지를 떼일 것이었다.
정확한 오리엔트 시계가 아홉 시 정각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삑삑、삑-.
아홉 시를 알리는 소리와 뒤이은 뉴스를 들으면서 차는 남대문 방향으로 우회전을 했다.
차가 원을 그리며 돌아갈 때 시시각각이 변화하는 전경은 일종의 경이로움을 준다.
그것은 마치 둥그렇게 휘어진 해안선을 따라 걸을 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자연의 시야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새로움에의 충격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시각적인 쾌감과 같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산과 바다와 또 넓은 해안선은 안 나타나더라도 곡선으로 이어지는 빌딩들이 위치마다에서 그 모습을 달리하는 것을 보며 형화는 조그만 쾌감을 느낀다.
동양고속에 연하여 다닥다닥 둘러붙어 늙어선 상가 건물들、그리고 그 앞에 어지럽게 수없이 내걸린 간판들은 나잡한 것이 지나치다 못해 이제는 하나의 독특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뒤에는 잘 다듬어진 남대문이 그처럼 도가 지나칠 만한 복잡한 선으로 또 다른 조화를 이루고 있고 여기에 특색을 하나 더 첨가시킬 듯이 자동차들이 그리는 복잡한 선은 아침의 서울역 주변을 한 폭의 현대판 그림을 그려 놓는다.
차가 남대문에 다다르면 여기서는 또 다른 고도(古都)를 연상시킨다.
차창을 거의 메꾸는 단단한 돌축대만의 단순한 시야.
그리고 오른편엔 궁정처럼 얕은 잔디와 꽃들이、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차가 로우터리를 완전히 지나 시청 앞 큰길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새로운 서울 시내의 풍물로 들어선 동방빌딩은 높은 하늘빛과 비슷해서 더 높아 보이고 더 시원해 보인다.
-저 집에 사는 사람들은 숨도 안 쉬는가 봐요.
-숨을?
-창문을 열 수도 없게 꽉꽉 붙여놓고 어떻게 살아요.
겨울이면 그 집에서 가장 크고 품위 있는 연기가 하얗게 솟아올랐다.
남대문 쪽에서 아무리 큼직한 건물들을 둘러보아도 그것처럼 육중하게 솟아오르는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추운 날 차 안에서라도 그집 굴뚝에서 올라가는 연기를 보면 저 사람들 따뜻해서 좋겠다、하는 생각보다 역시 부자와 안부자는 차이가 있는 거구나、하는 씁쓸함이 어떤 선망 속에 자리하고 있곤 하는 것이었다.
-우리 회사 소건물도 저것 비슷하게 지었다면서요?
-흉내를 낸 거지 저집 내부 시설은 꽤 쓸 만하지. 그런데 우리야 그만한 재력이 되어야지.
그러더니 최 상무는、
-빨리 나도 돈을 벌어야지 기 죽어서 못 살겠어、
하면서 읽던 신문을 탁탁 소리내 접어서 옆자리로 내던진다.
장안의 어지간한 무역상사들 중에서도 손 꼽히는 경성산업의 최 상무가、그것도 최 회장의 맏아들인 그가 하는 말이다.
시내는 공사판으로 거적 같은 천을 온통 둘러쓴 빌딩들도 많고 뚱땅거리며 길을 파고 덮는 곳도 많다.
환한 아침 햇살에 밝아진 건물들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시청은 거무스레한 형태로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전광장의 시계는 급작스레 형태를 바꾸더니 1자가 2자로 변했다.
이제 차는 시청 앞 분수 곁을 지난다.
흰 비둘기들이 시멘트 바닥에 도대체 무슨 먹이가 있다고 계속 모이 쪼는 시늉들을 한다.
한 무리의 새들이 시청 지붕에서 멀리 날아 없어지더니 다시 뿔뿔이 흩어져 모여든다.
그러나 서울의 부산한 월요일 아침 이제 하룻동안 지치도록 일과 전쟁을 벌이고 부상병처럼 집으로 기어들어야 하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가로수 밑으로 검은 가방을 옆에 끼고 걸어가는 흰 와이셔츠의 남자들이 눈에 뜨인다.
누군가 아、이 평화로운 아침 거리、라고 노래를 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형화 눈에 그는 총과 칼로 완전무장하고 적진을 향해 뛰어들려는 어떤 전투자로 비쳐 보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투명하게 가는 스타킹을 신고 조그맣고 윤기가 있는 핸드백을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전연 가면을 쓰고 있는 것만 같고 세상을 속이려고 웃음 짓는 요부처럼 느껴져 오는 것이다.
찰카닥.
운전사는 라디오를 껐다. 그리고 급히 뛰어내려 차를 돌아 오른편 문을 열어 최 상무의 출근길을 돕는다.
자、미스 조도 어서 내리시지요. 좋은 하루가 되십시오.
그러나 형화는 그 운전사도 가면 속에 시커멓고 흉악한 얼굴을 숨기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내려앉는 듯했다.
쾅 차문이 닫기는 소리를 들으면서 형화는 이 조용한 아침 거리와 온 세상이 음흉한 가식 속에 쌓여 있다고 생각하며 돌진하는 상관의 명령에 생명을 내걸고 적진으로 뛰어들고 있는 자신의 거짓 없는 모습을 한 눈에 보는 듯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