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결혼해서 신혼의 꿈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나에게는 최악의 전쟁이 일어났다.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천 리 먼 길로 총을 메고 나아가야 하는 이 마음은 쓰리고 아프지만 나라가 있고 평화가 있는 가운데 사랑도 있는 것이다.
잔인한 전쟁!
하늘도! 땅도 나도 울었다!
열여섯 살의 어린 나이로 국가와 겨례를 위하여 군에 입대를 했다. 돌과 해녀가 많기로 유명한 제주도 제1하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마치고 8사단 16연대 동부전선 양구 태백산 전쟁터로 육중한 배낭과 총을 메고 험하고 높은 산을 올라가다가 돌에 미끄러져 가시덩굴에 찢기어서 피가 흐르면서 높은 산을 올라갔다.
잔인하고 악독한 전쟁!
우리 대한의 용사들은 맨주먹으로 오랑캐를 무찔러야 했다. 공산군 놈들은 소련제 탱크와 갖가지 무기로 고요하고 평화로운 우리 대한민국 땅에 피를 보게 했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전우의 시체를 밟아가면서 북으로 전진해 갔다. 대한의 용사들아 잘 싸워야 한다. 세상을 뒤엎는 듯한 포성과 휘뿌연 매연의 연기 속에서 우리의 고지를 지켜나가기 위해서 내 몸에 칼과 총알이 들어와도 평화를 심고 자유가 오는 그날까지는 눈을 감고는 죽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부상을 입고 대구 육군 2769병원으로 후송이 되어 갔다. 혹독한 겨울의 추위 전쟁은 세상을 피비린내로 바꾸어 버렸다.
잔인한 전쟁! 이 땅에 평화를 심고 한 줌의 흙이 되고 싶었지만 꿈도 이루지도 못한 채 부상군이 되어버렸다. 병원에서 몸이 회복될 무렵 수많은 재산과 인명 피해를 남긴 채 전쟁은 휴전이 되었다.
나는 원호 대상자 명예 제대 18차로 제대를 했다. 불구의 몸은 괄세도 많고 천대하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이런 상황들을 극복하고 피나는 노력을 했다.
허름한 옷차림, 비록 아무 것도 없는 나였지만 추위로 배 고픔도 참고 고된 공부 생활을 해가면서 한 푼 두 푼 돈을 모아 나갔다.
어머님 곁을 떠날 때 젖먹이 아기와 재산이라고는 쌀 두 되와 산 2백 평만을 가지고 엄동설한에 울면서 나왔는데 생활이 차츰 발전이 되어 갔다. 금광에서의 일, 불구의 몸으로는 너무나도 고되고 험악한 일이었지만 처와 자녀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안간힘을 써 가면서 일을 했다.
아내는 품팔이를 해서 모으고 나는 광부생활을 하다가 1961년도 원호 대상자 혜택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광주에서 개인 기업체 종업원 생활을 해나가면서 하숙하는 대신 판자방을 얻어서 자취를 하고 밥을 먹는 대신 죽을 끓여 먹고 근무시간 중에 점심 도시락은 빈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으며 근무가 끝난 오후에는 극장이나 시외버스 정류소 등지에서 엿과 껌과 자 등을 팔았다. 온갖 서러움을 견디어 가면서 나는 계속 노력했다. 드디어 논 천 평과 밭 5천 평 산 1정보가 내게 만들어졌다. 티끌도 모으면 태산이 된다는 것처럼 1원이 모여서 태산이 되었으며 하면 된다는 일념으로 싸우다 보니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어진 것이다. 남들은 가시덩쿨 속에서 잔디를 찾았으며 목마른 사막에서 생명수를 찾았다고 모두들 부러워들 했다.
그러나 나는 잊을 수가 없다. 1961년 그 추웠던 겨울「아내 위급」이라는 전보를 받고 눈에 묻히면 죽어 못 간다는 산길을 왼쪽 다리 대신 막대기에 의지하며 백 리나 걸어갔던 일….
그러나 그때의 내 손에는 돈과 약이 쥐어져 있었으므로 조금도 괴로운 줄 몰랐다.
앓고 있는 아내는 내가 먹여주는 약을 먹다 말고 울먹였었다.
『여보 진짜 약을 먹어보기는 처음이군요! 고마워요…』
아내의 몸은 곧 회복되었고 우리집에는 봄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8남매 중 전쟁 때 낳은 큰 아이는 운동선수가 되어 현재 군에서 복무 중이고 나머지는 모두 고등학교 중학교 국민학교에 건강하게 다니고 있다.
죽기를 다해 살기로 결심한 지 십 년. 멸시와 천대와 병석의 인고를 겪고 마련한 논 7천 평 밭 5천 평 산 1정보, 불구였기 때문에 올라선 나의 땅이다. 소중한 나의 땅인 것이다. 나는 정상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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